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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9. 고신첩(唐, 顔眞卿)

멍석- meongseog 2008. 6. 7. 20:53
 

 

49. 告身帖(唐, 顔眞卿)


건중원년(建中元年, 780) 안진경이 태자소사(太子少師)를 제수하고 아울러 <고신첩>을 썼다.

<고신첩>은 묵적의 지본으로 386자를 46행에다 해서로 썼고, 첩 뒤에는 채양, 미우인, 동기창 등의 발문이 있다.  이 작품은 청나라 내부에 소장되었다가 공친왕(恭親王, 奕沂)에게 하사했고, 현재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촌불절(中村不折)씨의 서도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이는 안진경의 몇 안 되는 진적의 하나로, 매우 진귀하면서도 안진경 서예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좋은 자료이다.

이 묵적은 안진경 만년의 작품으로 앞의 두 비 서풍과는 다르다.  <근례비>는 맑고 웅장하며, <마고선단기>는 고졸한데, 이 묵적은 중간에 속하면서 서체에 크게 다른 바가 있다.  양수경(楊守敬)은 『학서이언(學書邇言)』에서 “안진경의 해서에서 비판(碑版)에 쓴 것과는 절대로 다르다.”라고 했다.  이런 특징을 형성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이 작품은 종이에 써서 비록 돌에 새기는 격식을 갖추었으나 서사한 격식은 다르다.  만일 이 작품과 같은 해에 쓴 <안유정가묘비(顔惟貞家廟碑)>와 비교하면 그 안의 오묘함을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은 ‘봉칙(奉勅)’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진지하게 썼다.  만일 다시 칸에 맞게 쓴다면 효과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비는 세로로 보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가 있으나, 두루마리는 책상에서 보기 때문에 거리가 비교적 가깝고 서사하는 격식과 요구도 자연히 같지 않다.  대서예가인 안진경은 이에 대해 매우 주의했으니, 그가 쓴 비와 간찰을 비교하면 이런 이치를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용필로 보면 돌에 새기는 글씨와 대체로 서로 같다.  갈고리는 무겁게 눌렀다가 가볍게 드는 법을 운용했고, 형태는 아두(鵝頭)와 같다.  파임도 먼저 오른쪽 아래로 가면서 무겁게 누른 연후에 중심을 오른쪽 위로 향해 내보낸다.  내보내는 곳은 때때로 삼각형의 이지러진 공간을 만드는데, 가로는 가늘고 세로는 굵다.  전절은 내엽법을 운용하거나, 혹은 내엽과 외탁을 합하거나, 혹은 조금 예서의 필의를 띠며 먼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해 둥글게 꺾는 법을 만든 다음에 행필과 서로 나란히 했다.  수(竪)와 날(捺)법은 중간을 무겁게 눌러 마치 무사의 팔다리와 같게 하여 근력이 밖으로 빛나게 했다. 

기품과 격조는 “항우가 갑옷을 걸어 놓고, 번쾌가 밀치고 돌파하며, 굳센 쇠뇌를 당기려 하고, 철 기둥을 세우려 하는 걸출함에 가히 범할 수 없는 기색이 있다[項籍掛甲, 樊噲排突, 硬弩欲張, 鐵柱將立, 傑然有不可犯之色].”(『海嶽名言』)라는 것과 대체로 서로 같다.  다른 것은 결체와 장법의 안배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돌에 새기는 안진경 후기의 글씨는 대부분 모난 형태로 써서 칸에 이르도록 했다.  설령 필획이 적은 ‘大, 不, 之, 王’자와 같은 글자라도 필획이 많은 글자와 같은 크기로 쓰면서 가로는 평평하고 세로는 곧게 하여 기운 형세가 매우 적었다.  이렇기 때문에 자간과 행간의 글자 배열이 매우 풍만했고, 한 글자를 정점으로 하여 이어지면서 웅혼함은 남음이 있으나 영활하고 수려함은 부족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글자에 크고 작음이 있으니, 예를 들면 ‘導’자는 크고 ‘乃’자는 작다.  바른 것과 기운 것이 있으니, 예를 들면 ‘元良之敎’에서 ‘元, 之’자는 바르고 ‘良, 敎’자는 조금 기울었다.  필획도 정제하지 않아 길고 짧음이 있으며, 평평하고 경사진 것이 있다.  예를 들면, ‘開, 之’자는 <마고선단기>, <가묘비>와 크게 다르니, 이 작품에서는 대비의 폭이 매우 강하고 졸한 가운데 교묘함을 취했으나 다른 비에서는 이와 같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자간은 때로 긴밀하고 때로 성글며, 행간은 분명하여 행은 있으나 열은 없다.  이와 같은 것은 비교적 활발하면서 일종의 고박한 ‘서권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비록 돌에 새기는 글씨의 필법을 운용했으나 실제로는 간찰을 쓸 때의 의치를 느끼게 한다.  뒤에 10여 행의 소해가 있는 것도 단지 안진경 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매우 연구의 가치가 있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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