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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스런 사랑

멍석- meongseog 2010. 9. 8. 16:57

 

       @ 2010.  멍석작/ 응시 (종이에 수묵, 물감)


 

  

                         

 

 

 

 

재앙스런 사랑


        시. 황지우


용암물이 머리 위로 내려 올 때

으스러져라 서로를 껴안은 한 남녀;

그 속에 죽음도 공것으로 녹아버리고

필사적인 사랑은 폼페이의 돌에

목의 힘줄까지 불끈 돋은

벗은 生을 정지시켜 놓았구나


이 추운 날

터미널에 나가 기다리고 싶었던 그대,

아직 우리에게 體溫이 있다면

그대와 저 얼음 속에 들어가

서로 으스러져라 껴안을 때

그대 더러운 부분까지 내 것이 되는

재앙스런 사랑의

이 더운 옷자락 한가닥

걸쳐두고 싶구나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은

아무리 하기 힘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화산암 속에서든 얼음 속에서든

하얀 김처럼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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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


    시. 황지우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뒤편 미루나무 숲으로

가시에 긁히며 들어가는 저녁 해;

누가 세상에서 자기 이외의 것을 위해 울고 있을까

해질녘 방바닥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는 자도 있으나

이제 얼마나 남았을꼬

아마 숨이 꼴깍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직 좀더 남았을 텐데, 생각하겠지만

망년회라고 나가보면 이제 이곳에 주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동창 수첩엔, 벌써 정말로 졸업해버린 놈들이 꽤 된다

배 나오고 머리 빠진 자들이

소싯적같이 용개치던 일로 깔깔대고 있는 것도

아슬아슬한 요행일 터이지만

그 속된 웃음이 떠 있는 더운 허공이 삶의 특권이리라

의사 하는 놈이, 너 담배 안 끊으면 죽는다이, 해도

줄창 피우듯이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 잊는다



- 황지우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 지성사.1998)중



                      



 



시음악출처;화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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