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스런 사랑
@ 2010. 멍석작/ 응시 (종이에 수묵, 물감)
재앙스런 사랑 시. 황지우 용암물이 머리 위로 내려 올 때 으스러져라 서로를 껴안은 한 남녀; 그 속에 죽음도 공것으로 녹아버리고 필사적인 사랑은 폼페이의 돌에 목의 힘줄까지 불끈 돋은 벗은 生을 정지시켜 놓았구나 이 추운 날 터미널에 나가 기다리고 싶었던 그대, 아직 우리에게 體溫이 있다면 그대와 저 얼음 속에 들어가 서로 으스러져라 껴안을 때 그대 더러운 부분까지 내 것이 되는 재앙스런 사랑의 이 더운 옷자락 한가닥 걸쳐두고 싶구나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은 아무리 하기 힘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화산암 속에서든 얼음 속에서든 하얀 김처럼 남아 있으리라 ********************************************************** 망년 시. 황지우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뒤편 미루나무 숲으로 가시에 긁히며 들어가는 저녁 해; 누가 세상에서 자기 이외의 것을 위해 울고 있을까 해질녘 방바닥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는 자도 있으나 이제 얼마나 남았을꼬 아마 숨이 꼴깍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직 좀더 남았을 텐데, 생각하겠지만 망년회라고 나가보면 이제 이곳에 주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동창 수첩엔, 벌써 정말로 졸업해버린 놈들이 꽤 된다 배 나오고 머리 빠진 자들이 소싯적같이 용개치던 일로 깔깔대고 있는 것도 아슬아슬한 요행일 터이지만 그 속된 웃음이 떠 있는 더운 허공이 삶의 특권이리라 의사 하는 놈이, 너 담배 안 끊으면 죽는다이, 해도 줄창 피우듯이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 잊는다 - 황지우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 지성사.1998)중
시음악출처;화실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