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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지의 역사와 예술성 - 미국 타우슨대학 특강 원고

멍석- meongseog 2015. 1. 2. 13:01

 

 

한지의 역사와 예술성 -타우슨대학 특강-2011.4.25

 

전통한지예술가 영 담

 

들과 산에는 봄을 알리듯 다양한 꽃들이 만개합니다. 이러한 봄의 기운들 속에 여러분과 함께 종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 무척이나 설레이는 마음입니다. 저는 역사학도도 전문종이과학자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술가로 불리기에도 삶에 있어서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기에 가끔은 부담스러운 타이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 다 알수 있는 종이의 역사나 과학에 대해서 혹은 예술적 논의보다는 제 인생에 있어 종이가 가지는 의미를 한번 되짚어 봄으로써 비록 인공적이지만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종이라는 꽃의 향기와 색채를 함께 공유할까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의 어린시절 종이에 대한 이야기와 수행자로서의 종이에 대한 이야기 이 두가지 큰 주제를 이야기하며 이와 관련된 한국종이의 역사와 특성을 짧게 언급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하는 종이에 관한 어린시절 이야기는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 일겁니다.

종이와 관련된 가장 큰 기억은 아버지와 관련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한의사이셨습니다. 그래서 집안에는 늘 한약냄새가 배어있었고 추녀밑에는 수많은 약봉지들이 주렁주렁 나란히 달려있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약방문이며 첩약을 싸는 종이가 흔했고 그리고 약방문과 처방전을 적으시던 아버님 때문에 항상 지필묵연(紙筆墨硯))이 글씨를 쓸 수 있도록 대기중인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일곱 살 때, 아버님이 한지를 펼쳐 놓으시고 자리를 비우신 사이 제가 붓에 먹을 찍어서 생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커다란 동그라미와 제 이름자였습니다. 그 당시 한지에 먹물이 번지는 모양이 마치 뭉게구름 같아서 신기해하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저는 유난히 장난스러운 악동이었습니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2년마다 약봉지를 새로운 것으로 바꾸었는데 그때마다 나오는 약봉지 폐지를 할머니와 어머니는 물에 담궈 풀어서 종이 함지박을 만들고 종이쟁반과 접시등 생활용품을 만드셨습니다. 저는 그때 물에 불린 폐지닥섬유 뭉치를 어른들 몰래 꺼내다가 흙담벼락에 붙이기도 하고 아무렇게나 던지기도 하면서 놀았는데, 흙담벼락에 퍼지면서 착 달라붙은 닥섬유가 햇빛에 마르면서 나타나는 모양이 무궁무진해서 알수없는 어떤 감흥이 일어나고 끝없는 상상이 펼쳐지곤 하였습니다. 저는 딱지치기 대장이었습니다. 다른아이들은 양지딱지였고 저는 두꺼운 한지딱지를 만들어 가지고 딱지치기를 하였는데, 양지딱지는 팔딱팔딱 잘 뒤집어지는 반면에 한지딱지는 한번 광풍을 일으키고 땅바닥에 착 달라붙으면 여간해서는 잘 뒤집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늘 이겼습니다. 또 종이로 연을 만들어서 하늘 높이 띄우기도 하고 제기를 만들어서 차고 놀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얇은 한지로 제기를 만들때 엽전의 작은 구멍으로 한지를 빼내어서 종이를 세로 찢어서 제기의 종이술을 만들때 종이가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에 많이 신기해 했습니다.

아버님과의 이런 기억때문인지 저에게 종이는 무언가 치유(治癒)의 의미로 깊이 각인되었고 치유로서의 종이는 어린시절에도 혹은 종이를 다루고 있는 이 시점에도 늘 함께 하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 영향으로 한지는 무엇이던지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주 질기고 쓸모있는 재료라는 인식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습니다. 또 한가지 기억은 떡종이입니다. 제사를 지내거나 고사를 지낼때 어머니께서 크고 작은 떡시루에 떡을 찌실 때 떡시루 밑에 깔았던 얇은 한지와 그 한지에 붙어있던 떡을 떼어먹던 기억은 생각만해도 행복한 추억입니다. 떡은 두세쪽씩 종이에 싸여 이웃과 친척집에 나누어졌고 그때마다 저는 심부름꾼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종이에 싸여있던 가장 달콤한 곶감이 한 개씩 저에게 심부름 잘한 포상으로 주어질 때는 그 기쁨은 여러분의 어린시절 초코렛과 비슷한 의미일겁니다. 아마도 그 시절에는 비니루가 없었기에 종이가 물건을 싸거나 남에게 받쳐서 주는 요긴한 물건이었습니다.

다음은 집의 지창(紙窓)입니다. 집에서의 종이의 의미는 문과 창입니다. 사람이 드나들고 공기가 드나드는 문과 창은 일상사에서 늘 부딫히는 집의 건축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중의 하나입니다. 모든 방문과 창문은 나무틀위에 각각 다양한 모양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창호지를 발랐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추석무렵이면 이러한 창호지는 낡은 것은 새창호지로 교체해 줍니다. 어릴적 풀을 쑤고 종이를 재단하여 창호지를 바르는 이날은 온 식구들이 함께 하는 예술창작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문창호지를 바르며 특히 손잡이가 있는 부분은 튼튼하라고 두겹을 바르면서 그 종이사이에 대나무잎이며 꽃잎을 넣었던 기억은 참으로 아름다운 추억이며 창작의 즐거움을 체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종이를 바른 지창(紙窓)에 스며드는 달빛과 어른거리는 나무그림자는 한폭의 그림이었고 문에 바른 문풍지가 바람에 떨며 내는 소리는 어린 나에게도 뭔가 가슴을 울리는 애틋한 악기소리 같았습니다.

한국은 유일하게 온돌문화가 있는 나라입니다. 바닥난방 시스템이기에 방바닥도 마찬가지로 두꺼운 한지장지의 장판지를 깔아 여러차례 콩기름을 발라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콩기름을 먹은 장판지가 시간을 따라 마르면서 색깔이 노르스름하고 붉으레하게 변화는 것을 눈여겨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벽에도 한지로 벽지를 발랐는데 한번 바르면 십년쯤 가서야 새로 바르곤 하였으며 벽에 바른 한지는 해가 거듭될 수록 색깔이 고풍스럽게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린시절부터의 종이와의 인연은 저에게 치유의 의미로 존재하며 늘상 종이를 통해 큰 보상의 의미와 베품(보시)의 의미, 그리고 무언가 멋지게 꾸밀 수 있는 창작의 의미로 깊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 뿐만아니라 모든 한국인에게 종이는, 특히 삶의 한부분, 일상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음은 수행자와 종이와의 관계입니다.

불교문화와 종이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경전을 유포시키는 근간은 종이이며 인쇄기술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종이 문화는 이미 평양부근의 2세기 전후의 유적에서도 종이 뭉치가 발견되었습니다. 중국도 105년 채륜의 종이 발견이전에도 실제로 종이가 사용되었다는 고고학적 발굴이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記)’에 의하면 서기600년경 한국(고구려)의 담징스님이 일본에 제지술을 전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7세기 경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는 바로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전입니다. 아마도 7세기초 일본에 제지술을 전파할 정도의 기술력이라면 훨씬 이전에 한국에서도 제지기술이 축적되었을 것으로 파악합니다. 사실 역사학계에서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는 상고사(上古史)가 있는데 ‘단군세기’라는 책에는 지금으로부터 4천여년전에 이미 한국은 종이를 만들어 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책‘삼국사기’영양왕조(서기 600년)에는 “고구려 건국초기부터(BC37년) 시사(時事)를 기록한 역사책 유기백권(留記百卷)이 있었는데 태학박사 이문진으로 하여금 신집오권(新集五卷)으로 개수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서기 600년경은 담징스님이 일본에 제지술을 전한 바로 그 무렵입니다. 따라서 한 문장에서 특별한 별기없이 두루마리 권(卷)자를 같이 쓴것을 보면 고구려 건국초기부터도 종이는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직지심체요절’입니다. 이 또한 불교 경전입니다.

동북아의 사찰문화는 남방불교와 달리 노동하는 자급자족의 선불교가 주류를 이루기도 하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하여 사찰문화에서는 다양한 종이문화와 관련된 직책과 전문분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종이를 제작하는 분야. 그림 담당, 서예 담당, 전각 담당, 책 디자인 분야, 염색분야, 제본 분야 등 다양한 분야의 분화된 전문직종들이 사찰내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19세기초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고 6,25라는 전쟁을 치루면서 전통문화가 많이 소실되고 제대로 계승발전되지 못한 아픈시절이 있습니다. 사찰에서도 다양했던 종이문화는 근대화를 맞으면서 한지의 자리는 대부분 양지(펄프기계종이)로 교체되어 유구한 종이문화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저로 하여금 전통종이의 맥을 이으며 수행하자는 생의 슬로건을 세우게 하였습니다. 한국전통종이인 한지의 질(質)의 맥(脈)은 불가(佛家)의 스님들에 의해서 계승되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은 저로 하여금 더욱 한지와의 인연을 깊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일하면서 정진한다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는 시대적 사명감처럼 저를 엄습하였습니다.

 

1995년 유럽에서 개최된 세계정보화대회에서 미국의 부통령인 엘 고어씨는기조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텐베르그보다 200여년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한 한국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화와 대중화에 실패했다”고 언급한적이 있습니다. 물론 엘 고어씨의 이 언급은 서울에서 열린 2005년 세계 정보화포럼에서 주체국을 배려해서인지 가장 앞선 금속활자를 발명한 한국인은 IT 분야 즉 인터넷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과 발전을 이루었다는 말로 바뀌긴 했지만요.

엘 고어 부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우리종이문화는 근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 종이문화 뿐만 아니라 많은 소중한 전통문화들이 유실되고 소멸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정신문화가 기계문명적으로만 발전하는데에는 한계와 모순이 있습니다. 인간의 정서적 미감(美感)과 정성(精誠)이 사라지고 효율성만 남아 새로운 문명이 창조될때마다 사실 인간의 심성은 더욱 삭막해지며 드디어 문명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주목해야 된다고 봅니다. 과연 인간이 효율성과 경제성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가치인가하는 의문이 강력하게 듭니다.

기계적이지 않고, 손맛이 느껴지고 사람의 정성이 깃들여진 작품, 그리고 모든 작품의 소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고 즐긴다는 일련의 과정에서 집중하게 되는 정신과 관조(觀照)의 에너지는 제가 종이작품을 하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경전과 가장 아름다운 성경, 코오란 등은 모두 그 당시 수도원 등에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바로 수행과 일이 하나가 된 지극한 정성의 소산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꼭 한지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아울러 한지의 특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환경 생태학적으로 한국에서 자생하는 닥나무로 생산하고 한국의 자연염료와 물질로 구성된 종이가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국종이의 질(質)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종이의 주원료인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그루터기식물로서 수명이 약 70여년으로 사람의 수명과 거의 같으며 한국의 산천에서 잘 자생합니다. 해마다 봄에 새가지가 나와서 자라면 겨울에 베어서 그 껍질을 벗겨서 종이를 만듭니다. 닥나무의 껍질은 그물형 겹조직으로서 조밀하고 질긴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한국의 닥나무는 중국이나 일본등 동남아 여려나라들의 닥나무에 비해서 섬유가 장섬유이며 광택이 나고 희고 질겨서 예로부터 중국의 선비들은 한국의 종이를 한번 써보기를 소원할 정도로 우수하고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한지의 물성적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한지는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흔히 강하면 부드럽기 쉽지않고 부드러우면 강하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한지’는 이러한 반대적인 두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종이가 단순히 기록서화용(記錄書畵用)으로만 쓰이는데 머물지 않고 삶의 공간에 들어와서 가지가지 생활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한지는 양각이 된 판본에 대고 문질러도 찢어지지 않고 탁본이 잘되며, 목판인쇄는 물론 금속활자까지도 만들어서 인쇄문화를 발전시켜 오는데 근간이 되었습니다.

둘째, 한지는 보온성과 통풍성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것처럼 한국사람들은 추운 겨울철에도 방문에 얇은 종이 한 장을 바르고 겨울을 지냈으며 솜대신 닥섬유를 넣어 누비옷이나 방한복을 만들어 입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문창호지를 통하여 바깥의 공기와 방안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유통되어 공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셋째, 한지는 내구력(耐久力)이 강하여 수명이 천년이상 보존됩니다.

예로부터 포오백년지천년(袍五百年紙千年)이라는 말과 지수천년(紙壽千年)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옷감은 수명이 오백년이요 종이는 수명이 천년간다는 뜻입니다. 한국에는 천년전 종이가 지금도 보존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종이는 지금으로부터 1,257년전에 만들어진 국보 제 196호로 지정된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종이입니다. 이 두루마리 경전은 통일신라시대(754년) 연기법사스님이 사경(寫經)한 것으로 그 발문에는 경전을 사경(寫經)하기 위해 종이를 만들고 종이를 만들기 위해 닥나무에 향수를 주어 길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향수를 먹고 자란 닥나무껍질로 종이를 만들면 종이에서도 향기가 나서 좀벌레같은 충해(蟲害)를 예방했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질기고 오래가는 우수한 종이덕분에 종이를 기반으로 하는 전적류문화재가 많으며 목판인쇄는 물론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창안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넷째, 한지는 신축성(伸縮性)과 가소성(可塑性)이 있습니다.

한지는 습기를 머금고 늘어나기도 하고 두꺼운 종이는 눌르면 들어가고 일으켜세우면 섬유가 일어서는 특징이 있습니다. 젖은 상태에서 음양각(陰陽刻)을 하여 마르면 형태가 오래가는 등 조각을 할 수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종이를 물에 적셔서 꼭 짜서 주물르면 많은 구김이 섬유를 오그라들고 부풀게 하여 이런 성질을 이용한 줌치작업으로 부드러운 천처럼 만들수도 있습니다.

다섯째, 한지는 투명성과 투과성이 있습니다. 한지는 문창호지로 쓰였을때 햇빛이나 달빛을 은은히 비춰주는 조명역할을 하며 전등에 씌우면 간접조명 효과를 냅니다. 뿐만 아니라 종이바탕이 여러겹으로 우물정자로 조직이 되어서 미세한 공기구멍이 있기 때문에 금을 세공할 때 사금을 걸러내는 데도 쓰이고 있습니다.

여섯째, 한지는 음양합지(陰陽合紙)이기 때문에 두겹의 종이가 한 장이 되며 물감을 깊이 머금습니다.

한지는 그 제조하는 방법상의 특징으로 반드시 음양합지를 만들게 되는데 두 장을 떠서 한 장이 되는 기법으로 종이가 완성되기 때문에 조직이 탄탄하고 물감을 머금는 깊이가 있으며 두 장으로 분리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한지는 다양한 변용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자체로서 예술작품을 가능하게 하는 점에 매력을 느끼며 저는 한지와 함께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저의 삶의 방법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저는 종이를 먼저 제작하면서 수 많은 과정을 보고 익히며 이 과정 자체가 바로 수행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또한 모든 과정들이 자연과 결합되어 자연으로 회귀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텅 빈 종이와 같습니다.

마음의 종이는 복잡한 셍각들이 가득차 있더라도 순식간에 비우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언제나 텅 빈 ‘마음바탕’이 있기에 우리는 자유롭고 쾌활하며 각자의 인생에 멋진 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텅 빈 한 장의 종이는 우리들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저는 한지를 만들때마다 한지가 갖는 하얀 ‘텅 빔’의 의미에 대해서 명상하곤 합니다. 흰가 하면 누렇고 누런가 하면 백옥같이 흰 ‘한지의 텅 빔의 멋과 가능성’에 매료되곤 합니다. 길고 짧은 닥섬유들이 자연스럽게 얼크러진 한지의 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열켜있는 조화의 세상과 존재의 연기성(緣起性)을 느끼게 됩니다.

 

종이에는 점 하나를 찍을 수도 있고 꽃과 나비를 그려넣을 수도 있고 시와 철학과 사상을 담을 수도 있으며 무한한 상상의 세계와 이상의 세계를 그려 넣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IT시대가 되어서 종이의 역할이 많이 반감되었습니다만, 여전히 종이는 인류의 정신문화를 담고 예술작품을 담아서 인류에게 길이 감동을 전해주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한지 만들기에서 예술까지’의 전과정을 체득하며 종이의 텅 빔의 의미와 ‘마음종이’를 동시에 관조하며 거기에 자유자재한 그림을 그려가는 것,

예술과 수행의 일체화,

이것이 저의 삶의 방법이며,

수행자로서 32년째 한지를 만들고 한지미술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입니다.

 

끝으로 닥종이(한지)에 대한 저의 시한편을 소개하며 강의를 마칠까 합니다.

 

빛의 종이 바람의 종이

달 빛 머금은 숨 쉬는 종이

하늘과 땅 그 가운데 사람에게

이 보다 이로운 물건 또 있을까

 

쓰는 이의 손길따라 오묘하게 변응하기는

너그러운 허공과 같고

내버려두어도 한결같이 기다려 주기는

어머니의 마음같은 종이,

 

풍상에 묵묵히 순응하는 미덕과

은근히 받아들이는 포용성과

천년세월을 꿋꿋이 넘나드는 내구력(耐久力)은

은근과 끈기의 민족성을 꼭 빼어닮은 겨레의 종이

 

종이가 좋아 종이와 함께 한 삼십여년

거기에 늙어감의 여유를 보태어

닥종이와 함께 무위(無爲)의 춤을 춥니다.

 

자연물색 먹은 종이는 산이되고 강이 되고

별이 되고 사슴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온 몸을 던 져 만든 닥섬유의 어루러짐은

심연(深淵)의 아련한 그리움을 끌어내었습니다.

 

닥종이는 내게 알 수 없는 아득한 그리움이며

함께 할 수록 깊어만 가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한지의 역사와 예술성.hwp

출처 : 영담스님의 이야기 창고
글쓴이 : 빙그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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