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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광수 미술전 보도 (오 마이 뉴스)

멍석- meongseog 2007. 12. 21. 16:44
OhmyNews
뉴스게릴라들의 뉴스연대...오마이뉴스 2007.1.31
» 김형순 님께서 보내신 OhmyNews의 기사입니다.
마광수 교수님 오마이뉴스 김형순기자입니다.
기사가 너무 늦어진 것 같아 죄송합니다.
편집부에서 메인기사가 되지는 못했군요.
기사를 아주 편안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잘 되었는지 염려됩니다.
하여튼 늦게나마 기사 보냅니다. 다음에 또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혹시 오류가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색(色)을 밝혀야 세상이 밝아진다?
마광수, 에스더 안 2인전 '색을 밝히다' 북스갤러리에서 2월6일까지
김형순 기자
▲ 마광수, 에스더 안 두 작가전 오프닝하는 날 전시장 내부. 북갤러리로 공간이 넓진 않아도 책의 향기로 풍성함이 넘친다. 이곳만은 성적 담론의 해방구라는 인상을 받았다
ⓒ 김형순
마광수, 에스더 안 두 작가전 '색을 밝히다'가 북스(VOOKS) 갤러리에서 에로틱하고 유머러스하고 팝아트적인 작품들이 오는 2007년 2월 6일까지 선보인다.

인간이란 도대체 뭔가? 라는 질문을 던질 때 '말'과 '밥'과 '돈'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분명 정치적, 경제적 동물이지만, '성'과 관련지어보면 자율적이고 문화적이고 창조적인 동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색(色) 혹은 섹스를 밝히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가는 마광수교수의 힘겨운 삶의 여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03년 5월에 개관한 인사동 '아시아에로스박물관'도 슬그머니 없어진 것을 보면 우리사회의 문화적 촌티가 그대로 드러난다. 우린 아직도 색 혹은 섹스에 관한한 밝은 대낮이 아니고 어두컴컴한 밤일뿐이다.

마광수, 정신에 짓눌린 육체

▲ 전시회 오프닝하는 날, 깊은 상념에 잠긴 마광수 교수
ⓒ 김형순
선사시대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가 균형감이 있었다. 오히려 모권사회로 전쟁이 없는 평화시대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부장사회가 굳어지면서 정신이 육체를 짓누르고 인간의 성적 행복은 유린되거나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것을 되돌려놓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이번 전시는 그런 면에서 의의가 크다.

마광수는 정신주의보다 육체주의가 우리사회를 더 밝게 한다고 봤다. 그래서 정신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파괴시켜왔다. 왜냐하면 정신주의라는 명분이 결국 인간을 죽음과 전쟁으로 몰고 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래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지만 이 한마디가 우리사회에 준 충격은 컸다. '얄미운 여자'는 가장 마광수다운 기질이 넘치는 작품으로 에로틱한 현대판 사설시조 같다. "내 페니스를 빨아주지도 않으면서 가랑이 사이로 혓바닥만 삐죽 내밀며 약을 올리는 초록색 치마의 그녀"

▲ '가자 장미여관으로' 켄트지에 파스텔화 54×36cm 2006. 아래 '얄미운 여자' 켄트지에 파스텔화 54×36cm 2006
ⓒ 김형순
작가는 고백하길 이런 작품은 그리는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구상하고 착안하는 데는 시간은 많이 걸린단다. 촌철살인의 유머정신은 이런 길고 힘든 지적 여과과정을 통해 보다 사람들에게 쉽고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네일아트를 창시하디시피한 마광수는 평화주의자이다. 사실 그와 직접 대면해보면 지극히 부드럽고 유연하다. 다만 그가 성적 담론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문화적 야만성을 폭로하다보니 그에 대한 편견과 선입감이 생겼을 뿐이다.

우리 법정은 창조적이고 기상천외한 성적 상상에 대해 엄격한 처분을 내리는 반면, 극악하고 비인간적인 성범죄에 대해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하다. 아직도 우린 이렇게 잔재하는 남성위주의 성적 독점권을 방치하고 있다.

▲ '키스' 켄트지에 파스텔화 54×36cm 2006. 두 작가가 나란히 다정하게 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다
ⓒ 김형순
작품 '키스'를 보면 남자는 눈을 감고 있고 여자는 눈을 뜨고 있다. 이것은 바로 '성을 겁내는 남자'와 '성을 밝히는 여자'를 상징한다. 우리시대 이상적 남녀관을 빗대어 그린 것인데, 뱀처럼 서로의 혀를 내밀고 휘감고 물고 빨면서 프렌치키스를 즐기는 모습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변태,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행위

마광수는 말하는 '야(野)함'의 정의란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고 동물적 본능에 정직한 것"이다. 하긴 이 세상에서 진짜로 야한 것이나 변태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예술적이고 독창적일 것이다. 마광수가 말하는 변태는 바로 그런 야함의 알맹이일 것이다.

▲ '끈적끈적, 무지무지' 켄트지에 파스텔화 54×36cm 2006
ⓒ 김형순
작품 '끈적끈적, 무지무지'는 그의 대표시 '변태'의 풍자화다. "내게 사랑이 오면, 온종일을 그녀와 함께 신나게 변태적으로 보내리… 꽃처럼, 불처럼, 아메바처럼, 송충이처럼 끈적끈적, 무시무시, 음탕음탕, 섹시섹시, 서로 물고 빨고 할퀴고 뜯어 온갖 시름 잊으리. 사랑은 순간, 사랑은 변덕, 사랑은 오직 꿈! 오오 변태는 즐거워라('변태' 중 일부)"

이런 표현은 아주 시적이고 해학적이고 독창적이다. 이런 지극히 개성적 정서를 스스로 검열을 해야 하고 이런 표현을 억압해야 한다면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분명 불행한 일이다. 집단주의가 다시 발붙일 것이다. 하긴 단군 이래 우리에게 언제 진정한 개인주의가 있었던가!

현대적 컬러 문인화

▲ 시계방향으로 '돈' '마조히즘' '첫눈에 반하다' '끈적끈적, 무지무지' '오럴섹스' '말로 말고 몸으로' '버림받은 여자' '자궁 속으로' 켄트지위 파스텔화 54×36cm 2006
ⓒ 김형순
이번 마광수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추사의 '세한도'처럼 우리시대의 문인화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주제가 성과 관련되었고 컬러가 들어간 현대서양화 풍으로 그렸을 뿐이다.

보면 볼수록 그의 그림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아마도 관객을 기절초풍시키거나 포복절도하게 하고 작가의 기고만장함과 천진난만함이 그림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기 때문이고 또한 노자가 말하는 대교약졸(大巧若拙)과 치졸미도 그 재미를 더했기 때문이리라.

에스더 안, 색은 그냥 색만은 아니다

▲ '잠언7장(어리숙한 젊은이 음녀의 유혹에 빠지다)' 혼합매체 캔버스에 유화 76×50.5cm 2006. 그림 속 상황을 작가가 퍼포먼스로 시연하다
ⓒ 김형순
에스더 안은 90년대 뉴욕에서 사진과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랫(Pratt)대학에서 미술도 수학했다. 작가는 관객 서비스차원에서 '잠언7장' 그림 속 상황을 직접 퍼포먼스로 시연해 보였다.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시대의 진정한 미인은 유혹녀 혹은 색녀가 아닐까 싶다.

유혹녀와 타락녀는 다를 것이다. 여신과 같은 위대한 유혹녀야말로 사랑의 혁명가로서 남성의 진정한 자아와 잠들어있는 영웅심과 남성성을 깨우쳐줄 것이다. 예술적 상상력을 갖추지 않고는 진정한 유혹녀가 될 수 없다. 남성들은 유혹녀의 품안에서 그들이 갈망하는 꿈을 실현하고 싶어 할지 모른다. 타락녀는 다만 남자의 돈만 노릴 뿐이지만…

'유혹'은 현대사상의 키워드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이 점을 꿰뚫고 있다. 대통령이 국민을 정치적 언어보다는 문화적 언어로 유혹해야하는 시대가 왔다. 눈앞에 이해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 '클레오파트라, 돈키호테 그리고 핵' 혼합매체 캔버스에 유화 61×91.5cm 2006
ⓒ 김형순
에스더 안의 또 다른 풍자화인 '클레오파트라, 돈키호테 그리고 핵'은 우리가 21세기 첨단과학시대를 살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별반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미를 통해 권력을 누린 요부 클레오파트라나 엉뚱하고 저돌적 꿈을 좇는 돈키호테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전쟁의 상징인 핵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사회가 경제부분에서 급성장했지만 문화적 다양성과 진정한 개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아직 별반 진전이 없어 보인다. 성적 담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왠지 마음이 서글퍼진다.

사회적 눈치 무시, 색을 밝히다

에스더 안은 아래 '허무(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라는 작품에는 진짜 미화 100달러를 비롯하여 많은 달러를 붙여 주목을 끈다. 이는 "돈! 너 엿먹어봐라"라고 비웃는 것 같다.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뉴욕에서 패션사업으로 할 때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었지만 어찌나 바쁜지 그 돈을 쓸 짬이 없었단다. 그녀는 결국 그런 삶에 질려 다시 그림 공부했단다.

▲ '허무(전도서, 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 혼합매체 캔버스에 유화 270×203cm 2006
ⓒ 김형순
그녀는 그림을 통해 돈을 개떡으로 만든 셈이다. 이런 통렬함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매우 커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화장실, 거울, 지위, 학벌 등 인간욕망의 상징물을 보여주곤 있지만 그건 하나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삶이란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을 내비친다.

바로 이것이 에스더 안만의 각별한 색의 밝힘이 아닐까 싶다. 색 밝힘에는 섹스가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각자의 취향, 개성, 특성, 영성, 가치관도 포함될 것이다.

아래 '자화상', '표정'을 보면 작가의 모습은 반사회적이고 반미학적이다. 거의 색녀나 광녀처럼 보인다. 진정한 섹스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사회적 기반을 뒤흔드는 반칙을 퍼붓고 있다. 색 혹은 섹스를 노골적으로 밝히고 그 열락에 빠져 진한 사랑도 고백한다. 작가는 남편 온몸에 키스하듯 종이위에 25번 찍은 립스틱 그림도 공개했다.

파괴 없는 창조가 없듯이 사회의 눈치를 보다보면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색 혹은 섹스를 밝히려면 이렇게 때론 반항적이고 전위적이고 파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때로는 마광수 교수의 사례처럼 엄청난 비난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신체가 구속되는 일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하더라도 색 혹은 섹스를 밝힐 때 달리 말해 각자의 고유한 성과 독특한 개성과 색채와 창조성을 밝힐 때 우리 사회는 분명 더 밝아질 것이다.

▲ '자화상(좌)' '표정(우)' 혼합매체 캔버스에 유화 81.5×102cm 2006. 이 작품은 다 자신을 모델로 하여 만든 작품이다
ⓒ 김형순
북스(vooks)갤러리 전화 02-737-3283 위치는 인사동 스타벅스 건너편
미술, 사진을 중심으로 패션, 디자인, 실내장식, 건축 등 눈으로 즐기는
모든 분야의 책(visual books)이 그득한 곳으로 북 카페이자 복합문화 공간

2007-01-30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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