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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2. 공자묘당비(唐, 虞世南)

멍석- meongseog 2008. 6. 7. 20:47
 

 

32. 孔子廟堂碑(唐, 虞世南)


우세남(虞世南, 558-638)의 자는 백시(伯施)이고 월주여요(越州餘姚, 지금의 浙江省 餘姚) 사람으로 당나라의 걸출한 서예가이고 서예교육자이며 지식이 연박한 문학가였다.  진, 수, 당(陳, 隋, 唐) 3대를 살면서 당나라에 들어온 후 이세민에게 중용을 당해 홍문관십팔학사(弘文館十八學士)의 한 사람이 되었다.  벼슬은 광록대부(光祿大夫)와 비서감(秘書監)을 지내 영흥현(永興縣)에 봉해졌기 때문에 ‘우비감(虞秘監)’ 또는 ‘우영흥(虞永興)’이라 불렸다.  글씨는 지영을 계승했고 ‘이왕’ 서풍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구양순ㆍ저수량ㆍ설직과 더불어 당초사대가라고 불린다.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와 옛날 모본 묵적인 <여남공주묘지명(汝南公主墓誌銘)>이 있다.

<공자묘당비>는 당나라 무덕(武德) 9년(626)에 시작해 정관(貞觀, 627-649) 연간에 완성했으며 우세남이 글을 짓고 썼다.  이 비는 해서로 64자를 285행에다 썼다.  비가 완성된 후에 이를 감상하려는 사람의 수레가 끊이지 않았고 이를 탁본함에 쉬는 날이 없었지만 잘못하여 불에 훼손됐다.  북송 때에 원각의 탁본은 이미 얻기가 어려웠다.  이에 대해 황정견(黃庭堅)은 “우세남이 쓴 <공자묘당비>는 정관 연간에 새긴 것으로 천량의 황금으로 구입했다.”라고 했다.  현재 가장 오래된 탁본은 임천(臨川)의 이종한(李宗瀚)이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원래 원나라의 강리자산(康里子山)이 소장했던 것이다.  이 가운데 마멸이 심한 것은 대부분 당나라 탁본이고 나머지 글자는 모두 ‘섬본(陝本)’으로 짝을 이루며 현재 일본의 삼정청빙각(三井聽氷閣)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당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명비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이왕’의 옛날 법을 고수하면서 해서가 이미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역대 서예가에게 매우 많이 중시했다.  황정견은 『산곡집(山谷集)』에서 “우세남은 항상 중간 획이 배부르고 글씨는 말년에 더욱 묘해졌다.  정관 연간에는 이미 70세가 되었으나 글씨는 더욱 공교해 다른 사람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했다.”라고 했다.  <공자묘당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용필은 둥글고 유창하며 필의는 성글고 글자는 완만하다.  용필에서 ‘원창(圓暢)’은 매우 어려운 경지이다.  왜냐하면 법을 제대로 얻지 못하면 골력이 굳세지 못해 가볍고 매끄러운 병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만약 아주 둥글면서 부드러운 필치에 강한 기세를 더한다면 서예에서 가장 뛰어난 경지를 이룰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우세남은 아주 뛰어난 경지를 발휘했다.  필획을 전환하는 곳은 외탁으로 ‘원창’을 이루고 점과 획은 대부분 원필을 썼으며 비록 때로는 방필이나 측필을 사용하더라도 의취는 여전히 둥근 글씨를 이루고 있다.  행필은 대부분 순필심입법(順筆深入法)을 채용했기 때문에 중간의 필력이 풍만하면서 둥글고 윤택해 금과 옥의 기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그는 점과 획들을 모두 버뜅기고 눌러 안주시킬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세남의 묘한 비결이다.  결체는 너그럽고 성글며 가로획은 평평하고 세로획은 곧아 기울거나 쏠리는 형세를 만들지 않았다.  행필은 느리고 안온하며 경중의 변화는 매우 은밀히 미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골력은 안으로 감추어 둥글고 혼후하며 윤택해서 규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진실로 ‘이왕’의 모범적 서풍이고 지영의 묘한 반향이기도 하다.  군자는 그릇을 감추기 때문에 말은 얕으나 의미는 깊다.

둘째, 온아한 가운데 표일한 기를 함유하고, 평담한 가운데 정신을 나타냈다.  구양순의 글씨는 종세에서 필력을 나타내지만 우세남은 횡세에서 표일하고 굳셈을 나타냈다.  우세남의 글씨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과구(戈勾)’로 ‘우과(虞戈)’라는 칭찬이 있었으며 기운 형세로 붓을 따라 오른쪽 아래로 내림에 천균의 힘이 있는 것 같다.  이외에 오른쪽 삐침은 조금 길어 풍류가 맑고 표일하다.  이러한 것은 평평하고 판에 박힌 듯 딱딱한 형식을 쉽게 파타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주성연(周星蓮)은 『임지관견(臨池管見)』에서 “우세남의 글씨는 향기가 있으면서도 표일하며 행동거지가 편안하고 온화하다.  그리고 그들의 글씨에서는 봄과 여름의 무성한 기운을 얻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기쁜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와 같은 정신은 필봉 사이에서 은근히 드러나고 있다.

셋째, 기색이 수려하고 윤택하며 풍신은 세련되고 심원하다.  우세남의 용필은 보기에 매우 깨끗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질감이 있어 맑고 수려하면서 둥글고 윤택하다.  필의는 화창하고 음양을 짊어져 부드러운 기를 얻어서 뜻과 기운이 평화롭고 풍모와 법도가 스스로 심원하다.  그러므로 주장문(朱長文)은 『속서단(續書斷)』에서 “우세남은 학문이 깊고 넓으며 의론함이 바르고 조그마한 아부도 없이 정의에 항거하는 그의 바른 정신은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의 글씨는 기운이 빼어나고 색이 윤나면서 뜻과 붓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강한 맛을 함유하고 법도를 준수했기 때문에 부드러우나 함부로 되지 않았으니 바로 그 사람됨과 같다.”라고 했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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