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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2. 서보(唐, 孫過庭)

멍석- meongseog 2008. 6. 7. 20:51
 

 

42. 書譜(唐, 孫過庭)


초당의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과 같은 대가가 죽은 뒤에 이른바 ‘명석서(銘石書)’는 볼만한 것이 없어졌다.  그러나 서간(書簡)과 문고(文稿)와 같은 작품은 끊이지 않아서 손과정의 <서보>와 같은 불후의 걸작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왕희지에 대한 서학의 총결이기도 하다. 

손과정(孫過庭, 648-703)의 자는 건례(虔禮)이고 오군(吳郡, 지금의 江蘇省 蘇州) 사람으로 솔부록사참군(率府錄事參軍), 우위주조참군(右衛冑曹參軍)과 같은 낮은 벼슬을 했다.  당시 대시인인 진자앙(陳子昻)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렇기 때문에 손과정이 죽자 진자앙은 묘지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손과정은 어려서 효제(孝悌)를 숭상하여 학문에 이르지 못했다.  자라면서 도를 깨우쳐 봉록에 종사하는 일을 주로 삼지 않았다.  충성과 믿음이 뛰어나나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았고, 인의를 근면하게 실천했으나 귀함이 되지 못했다.


이것을 보면 손과정은 살아서 외로웠고 죽어서 쓸쓸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으로는 단지 <서보>만이 전해지고 있다.

<서보>는 종이에다 쓴 묵적으로 가로와 세로가 892.24cm×27.2cm이다.  초서로 351행에 3,500여 글자를 수공(垂拱) 3년(687)에 썼으며 현재 대만고궁박물원에 수장되어 있다.

<서보>는 글씨와 문장이 뛰어나 쌍절(雙絶)로 유명한 불후의 작품이다.  여기에 기록된 서론은 서학 또는 미학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이를 능가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갖추었으며 역대로 서학의 경전으로 삼고 있다. 

<서보>처럼 길고 정미함이 뛰어난 작품은 서예사에서 보기 드물다.  역대 서예가들도 이에 대해 매우 높은 평가를 했다.  미불의 서예 평가는 매우 첨예한데 <서보>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안목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서사(書史)』에서 “손과정의 <서보>는 왕희지의 필법을 매우 잘 이어받은 작품이다.  글자를 쓸 때 발을 앞으로 조금 내밀면서 곧바로 서는 것이 손과정의 필법이다.  세상에서 왕희지의 글씨라고 하는 것 중에 이러한 글자가 있으면 모두 손과정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무릇 당나라 초서가 ‘이왕’의 법도를 얻었지만, 그의 경지를 뛰어넘지 못했다.”라고 했다.  유희재는 『서개(書槪)』에서 “손과정의 초서는 당나라에서 가장 잘 진나라의 필법을 이어받았다.  그가 쓴 <서보>의 용필은 파격적이면서도 더욱 완전하고, 분란하면서도 더욱 정리되어 있으며, 표일하면서도 더욱 침착하고, 하느작거리면서도 더욱 강건한 아름다움이 있다.”라고 했다.  이러한 평가는 매우 실제에 부합되는 말이다.  작품 전체를 보면 기식은 왕희지와 맥락을 같이 하며 왕희지 초서의 삼매를 깊게 얻었다.  이 작품은 손과정이 단숨에 쓴 것이지만 감각, 정서, 생숙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전체의 기식과 정조 또한 다르다.

이 작품을 3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전반부는 법도에 맞게 썼기 때문에 점과 획 그리고 용필은 힘써 근엄함을 추구하여 조금도 구차하지 않도록 했고 행간은 돌아봄에 자태가 나타나도록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평화롭고 조용한 느낌이 들고 자유분방하며 표일한 자태는 없으며, 또한 필묵의 형태에 뜻을 둔 것 같다.  중반부는 용필이 갈수록 방종해지고 흥분되면서 리듬감이 더욱 명쾌해진다.  붓을 들음은 마치 못을 뽑는 것 같고, 붓을 누름은 마치 북을 두드리는 것 같아 경중과 강약의 변화를 붓끝에서 다하면서 종이 위에서 정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필묵의 형태를 잊고 마음과 손이 모두 잊는 무르익은 경지에 들어갔다.  후반부는 흥이 최고조에 오르면서 득의망형(得意忘形)의 상태에 들어간다.  전체적으로 리듬이 고조됨에 따라 행과 열의 분포를 타파하여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모아지고, 때로는 일어나고, 때로는 엎어지기도 했다.  먹물은 윤택하고 마른 사이에서 묘한 울림이 나타나고, 마음과 손에서는 법도를 뛰어넘어 무법에서 법이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므로 비록 형태는 왕희지의 필법을 닮았으나 실제는 손과정의 정회를 나타낸 것으로 육간지(陸柬之)와 비교하면 본질적인 구별이 있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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