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譜卷上<吳郡孫過庭撰>
가. 四賢의 愚劣論
1.夫自古之善書者.漢魏有種張之節.晉末稱二王之妙.
예로부터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後漢의 장지(張芝)․魏의 종요(種繇)의 뛰어남이 있고, 晉末의 왕희지.헌지(王羲之․獻之)의 父子의 신묘함을 일컬었다.
2.王羲之云頃尋諸名書.種張信爲絶倫.其餘不足觀.可謂種張云沒而羲獻繼之.
왕희지(王羲之)가 이르기를, “근래 諸家중 名家의 書를 찾아 구함에 종요.장지(種繇.張芝)가 가장 뛰어났고, 그 외는 족히 볼 만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鐘․張의 사후에 王羲之․獻之의 父子가 그들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3.又云吾書比之種張.種當抗行.或謂過之.張草猶當鴈行.然張精熟.池水盡墨.假令寡人耽之若此.未必謝之.此乃推張邁種之意也.
또한 왕희지(王羲之)가 이르기를, “내 글씨를 鐘․張에 비교하면 종요(種繇)와는 동등하거나 혹은 그보다 낫다고 말하고, 장지(張芝)의 草書에는 오히려 조금 처진다. 그러나 張芝의 능숙함은 연못의 물이 먹물로 다 변하도록 연습한 것이니, 가령 내가 이처럼 탐닉(耽溺)했다면 반드시 張芝에게 미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 것은 바로 張芝가 種繇보다 낫다고 推想한 뜻이다.
4.考其專擅.雖未過於前規.摭以兼通.故無慙於卽事.
種繇와 張芝의 專擅을 詳考함에 비록 前規를 능가한다고 할 수 없으나, 취해서 겸하여 통하여도 일상의 용무에 부끄러워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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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評者云.彼之四賢.古今特絶.而今不逮古.古質而今姸.夫質以大興.姸因俗易.雖書契之作.適以記言.而淳醨一遷.質文三變.馳騖沿革.物理常然.貴能古不乖時.今不同獘.所謂文質彬彬.然後君子.何必易雕宮於穴處.反玉輅於椎輪者乎. 비평가들이 말하기를,“저 四賢은 고금에 뛰어나서 지금이 옛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옛 것은 질박하고 지금은 곱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대저 질박(質朴)함은 크게 흥하고 연미(姸媚)함은 세속으로 인하여 바뀐다. 비록 書契가 만들어져 마땅히 말을 기록하더라도 醇(淳)醨가 한번 바뀌고 質文이 여러 번 바뀐다. 달려온 연혁은 변하지 않는 사물의 이치이다. 능히 옛 것이 때에 어긋나지 않고 지금에 폐단을 같이 하지 않음을 귀하게 여긴다. 이른바, “文과 質이 알맞게 섞긴 뒤에 君子이다.”라고 하니, 어찌 반드시 雕宮을 穴處로 바꾸고 玉輅를 椎輪에 바꾼 자이겠는가?
6.又云子敬之不及逸少.猶逸少之不及種張.意者以爲評得其綱紀.而未詳其始卒也.且元常專工於隸書.百英尤精於草體.彼之二美.而逸少兼之.擬草則餘眞.比眞則長草.雖專工小劣.而博涉多優.摠其終始.匪無乖互. 또 말하기를, “子敬(獻之)가 逸少(羲之)에 미치지 못함은 逸少(羲之)가 鐘․張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그 綱紀를 평함을 얻었음에도 그 처음과 마침에 자세하지 못했다. 또한 元常(種繇)은 오로지 隸書에 능하고 百英(張芝)은 더욱 草書에 뛰어났다. 그 두 사람의 좋은 점을 逸少는 겸하였다. 草書를 헤아리면 楷書에 여유 있고 楷書를 비교하면 草書에 장점이 있다. 비록 전공한 것에 조금 부족하나 널리 섭렵(涉獵)함에 다소 우수하다. 그 始終을 종합해보면 어긋난 점이 없지 않다.
7.謝安素善尺牘.而輕子敬之書.子敬嘗作佳書與之.謂必存錄.安輒題後答之甚以爲恨.安嘗門敬.卿書何如右軍.答云故當勝.安云物論殊不爾.子敬又答.時人那得知.敬雖權以此辭.折安所鑒.自稱勝父.不亦過乎.且立身揚名.事資尊賢.勝母之里.曾參不入.以子敬之豪翰.紹右軍之筆札.雖復粗傳楷則.實恐未克箕裘.况乃假託神仙.恥崇家範.以斯成學.孰愈面牆.後羲之往都.臨行題壁.子敬密侙除之.輒書易其處.私爲不惡.羲之還見.乃歎曰.吾去時眞大醉也.敬乃內慙.是知逸少之比種張.則專博斯別.子敬之不及逸少.無或疑焉. 謝安은 본래 尺牘에 능하여 子敬의 書를 輕視하였다. 子敬이 일찍이 좋은 글을 써서 謝安에게 주었다. 반드시 보존할 것으로 여겼는데 謝安이 문득 題한 후에 답을 하여 매우 한탄하였다. 謝安이 일찍이 子敬에게 묻기를, “卿의 書가 右軍(王羲之)에 견주어 어떠한가?” 라고, 답하여 이르기를, “그야 당연히 우수하다.” 謝安이 이르기를, “物(衆)論은 전혀 다른지 않는가?” 라고 子敬이 또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子敬은 비록 權道로 이 말로써 謝安의 감식하는 안목을 꺾었다고 할 수 있으나 스스로 아버지 보다 우수하다고 칭한 것은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또한 立身하여 名을 떨치는 것은 부모를 존귀하게 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오, ‘勝母’라는 洞里에 曾參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고사가 있다. 子敬의 豪(毫)翰은 右軍의 筆札을 이었다. 비록 다시 대략 楷則(書法)을 傳承하였다 할지라도 실로 생각건대 가업(箕裘: 家業)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하물며 神仙을 假託하여 家範을 숭상함에 욕되게 했다. 이로써 학을 성취함은 벽에 부딪치는 것과 무엇이 나으리요. 후에 王羲之가 서울에 갈 때 출발에 임하여 벽에 글을 써놓았다. 獻之는 몰래 그 필적을 닦아 없애고 곧 그곳에 바꿔 써두고 자기 생각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羲之가 돌아와 보고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 떠날 적엔 많이 취했도다.”라고 獻之가 비로소 내심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이로 알 수 있듯이 逸少(羲之)를 鐘․張을 비교한다면 一體專修와 諸體兼修의 차이는 이에 구별되고 子敬이 逸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혹시라도 의심이 없으리라.
나. 書의 本質과 價値 8.余志學之年.留心翰墨.味種張之餘烈.挹羲獻之前規.極慮專精.時逾二紀.有乖入木之術.無間臨池之志. 내가 지학(志學: 十五歲)의 해에 뜻을 한묵(翰墨)에 유념하여 種․張의 여열(餘烈: 墨蹟)을 吟味하고 羲․獻의 전규(前規: 書法)을 취하는 등 생각를 다하고 전심으로 정진 하기를 이기(二紀: 二十四年)을 경과하였다. 入木之術(書道)에 어긋남이 있을지라도 임지(臨池: 池水를 먹물로 변하게 하여 書道에 熱中했다는 張芝의 意志)의 意志에 중단하는 일은 없었다.
9.觀夫懸針垂露之異.奔雷墜石之奇.鴻飛獸駭之資.鸞舞蛇驚之態.絶岸頹峯之勢.臨危據橋之形.或重若崩雲.或輕如蟬翼.導之則泉注.頓之則山安.纖纖乎似初月之出天崖.落落乎猶衆星之列河漢.同自然之妙有.非力運之能成.信可謂智巧兼優.心手雙暢.翰不虛動.下必有由.一畫之間.變起伏於峯杪.一點之內.殊衄挫於豪芒. 대저 현침수로(懸針․垂露)의 다름, 분뢰추석(奔雷․墜石)의 기이함, 홍비수해(鴻飛․獸骸)의 자태, 절안퇴봉(絶岸․頹峯)의 형세와 임위거고(臨危․據高)의 형상을 관찰함에 간혹 중후한 것은 무너지는 구름과 같고, 간혹 가벼운 것은 매미의 날개와 같다. 이를 이끌어 샘물을 머물게 하고, 이를 머물게 하면 산과 같이 편안 하도다. 가늘하기가 초승 달이 하늘 끝에서 나오는 것 같고, 떨허지기가 무수한 별들이 은하를 이룬 것과 같다. 自然의 묘유(妙有: 原始存在)와 같아서 인력으로 운용하여 능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지혜와 기교가 겸하여 우수하고 심경과 팔꿈치가 서로 통하여 翰(붓)을 헛되이 움직이지 않고 下筆에 까닭(根據)이 있고 一畫 사이에 起伏을 붓 끝에서 변하고 一點의 안에 衄挫(점)을 호망(毫芒)에 달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10.况云積其點畫.乃成其字.曾不傍窺尺牘.俯習寸陰.引班超以爲謝.援項籍而自滿.臨筆爲體.聚墨成形.心昏擬効之方.手迷揮運之理.求其妙姸.不亦謬哉. 하물며 이르기를, “그 點畫을 거듭한다면 이에 그 글자를 이룬다. 일찍이 尺櫝을 엿보고 잠시도 엎드려 익히지 않고, 반초(班超)를 인용하여 말로 삼으며 항적(項籍)을 원용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먹물을 모아 모양을 이룬다. 마음이 의효(擬效: 模倣)의 방법에 혼미하며 손은 揮運의 이치에 미혹하고, 그 姸妙함을 추구한다는 것이 또한 그릇된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11.然君子立身.務修其本.楊雄謂.詩賦小道.壯夫不爲.况復溺思豪氂.淪精翰墨者也. 그러나 君子의 立身은 힘써서 그 근본을 닦는 것인데 楊雄이 이르기를, “詩賦는 小道라 장부도 하지 않는다.”라고 한데, 하물며 다시 생각을 붓 끝에 眈溺하여 한묵(翰墨)에 정력을 빠뜨리는 者에 있어서 인가?
12.夫潛神對奕.猶標坐隱之名.樂志垂綸.尙體行藏之趣.詎若功宣禮樂.妙擬神仙.猶挻埴之罔窮.與工鑪而並運.好異尙奇之士.翫體勢之多方.窮微測妙之夫.得推移之奧賾.著述者假其糟粕.藻鑑者揖其菁華.固義理之會.信賢達之兼善者矣.存精寓賞.豈徒然與. 정신을 가다듬어 바둑에 대하더라도 오히려 좌은(坐隱)의 이름을 표하며 자기의 뜻을 즐기며 낚시 줄을 드리움에 오히려 행장(行藏)의 나감을 체험한다. 어찌 공을 들여 예악(禮樂)을 드러내고 묘미(妙味)를 신선에 비기겠는가? 오히려 挺埴(: 陶器를 빚음)이 다함이 없고 工鑪(:鑄物을 만듦)와 더불어 함께 運用하는 것과 같다. 특이함을 좋아하고 기이함을 숭상하는 선비는 서의 결체와 필세의 다방면을 즐기고 미요(微妙)함을 궁리하고 헤아리는 자는 운필의 변화에 奧賾(: 深奧)함을 얻고자 한다. 저술자는 그 糟粕(: 쓸모 없는 것)함을 빌리나 藻鑑(: 鑑賞)하는 자는 그 菁華(: 精粹)를 퍼낼 것이다. 진실로 義理에 귀의함에는 참으로 현달함을 겸하여 능한 사람이니라. 한묵(翰墨)에 정신을 쏟아 감상에 부치는 것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는가?
13.而東晉士人.互相陶淬.至於王謝之族.郗庾之倫.縱不盡其神奇.咸亦揖其風味.去之滋永.斯道逾微.方復問疑稱疑.得末行末.古今阻絶.無所質問.設有所會.緘祕已深.遂令學者茫然莫知領要.徒見成功之美.不悟所致之由. 그러나 東晉의 士人은 상호 陶淬(: 感化薰染)하여 王․謝氏의 일가와 郗․庾氏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신기(神奇)를 다하지 못했으나 모두 또한 그 풍미(風味)를 얻었다. 時代가 갈수록 더욱 오래되어 斯(: 書)道가 더욱 쇠미해졌다. 바야흐로 다시 의심난 것을 듣고 그 것을 칭하고 말초적인 것을 얻어 그 것을 행하여 古今에 전해지는 것이 없어 물어 볼 바가 없다. 설령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緘祕(: 침묵을 지켜 말하지 않음)가 이미 심하였다. 마침내 학자로 하여금 망연히 요령을 알지 못하고 한갓 성공의 아름다움을 보며 지극한 바의 까닭을 깨 달지 못하였다.
14.或乃就分布於累年.向規矩而猶遠.圖眞不悟.習草將迷.假令薄解草書.粗傳隸法.則好溺偏固.自閡通規.詎知心手會歸.若同源而異派.轉用之術.猶共樹而分條者乎. 혹은 여러 해 동안 분포(分布: 布白)를 취하였으나 규거(規矩: 書法)에 향하여서는 오히려 멀고, 진서(眞書: 楷書)를 쓰나 깨닫지 못하고 초서(草書)를 익혔으나 장차 미혹될 뿐이다. 가령 초서를 널리 알고 대략 예법(隸法: 楷書)을 傳受하였더라도 심하게 치우쳐 나쁜 버릇에 빠지며 스스로 통규(通規: 올바른 서법)를 폐하였다. 심수회귀(心手會歸: 정신과 기교와의 일치)는 근원을 같이하고 지류가 파생을 달리 함과 같이 전용(轉用: 용필의방법)의 기술은 나무를 같이하나 가지를 나누는 것과 같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15.可以趍變吏適時.行書爲要.題勒方복.眞乃居先.草不兼眞.殆於專謹.眞不通草.殊非翰札. 관리의 일상 업무 시에 행서가 중요하고 제액(題額)이나 금석비류(金石碑類)와 편폭(偏幅)에 쓰는 것은 해서를 먼저 한다. 초서가 진서(眞書: 해서)를 겸하지 못하면 아마도 전근(專謹: 端正)한 書에 위태롭고, 해서가 초서에 통하지 못하면 전혀 한찰(翰札)을 쓸 수 없다.
16.眞以點畫爲形質.使轉爲情性.草以點畫爲情性.使轉爲形質.草乖使轉.不能成字.眞虧點畫.猶可記文.迴互雖殊.大體相涉. 진서(眞書)는 점획(點畫)으로 자형의 바탕이 되고 사전(使轉)으로 情性을 나타내며, 초서(草書)는 點畫으로 情性이 되고 使轉으로 자형의 바탕이 된다. 초서가 使轉에 어그러지면 능히 자형을 이루지 못하나 草書는 點畫을 이지러지더라도 오히려 문을 기록할 수 있다. 회호(廻互: 轉換)가 비록 다르나 대체로 상섭(相涉: 相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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