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思開/서예보다

[스크랩] 書譜卷上<吳郡孫過庭撰>

멍석- meongseog 2010. 2. 7. 18:21

書譜卷上<吳郡孫過庭撰>

 

가. 四賢의 愚劣論

1.夫自古之善書者.漢魏有種張之節.晉末稱二王之妙.

예로부터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後漢의 장지(張芝)․魏의 종요(種繇)의 뛰어남이 있고, 晉末의 왕희지.헌지(王羲之․獻之)의 父子의 신묘함을 일컬었다.    

 

2.王羲之云頃尋諸名書.種張信爲絶倫.其餘不足觀.可謂種張云沒而羲獻繼之.

왕희지(王羲之)가 이르기를, “근래 諸家중 名家의 書를 찾아 구함에 종요.장지(種繇.張芝)가 가장 뛰어났고, 그 외는 족히 볼 만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鐘․張의 사후에 王羲之․獻之의 父子가 그들을 계승하였다고 할 수 있다.  

 

3.又云吾書比之種張.種當抗行.或謂過之.張草猶當鴈行.然張精熟.池水盡墨.假令寡人耽之若此.未必謝之.此乃推張邁種之意也.

또한 왕희지(王羲之)가 이르기를, “내 글씨를 鐘․張에 비교하면 종요(種繇)와는 동등하거나 혹은 그보다 낫다고 말하고, 장지(張芝)의 草書에는 오히려 조금 처진다. 그러나 張芝의 능숙함은 연못의 물이 먹물로 다 변하도록 연습한 것이니, 가령 내가 이처럼 탐닉(耽溺)했다면 반드시 張芝에게 미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 것은 바로 張芝가 種繇보다 낫다고 推想한 뜻이다.   

 

4.考其專擅.雖未過於前規.摭以兼通.故無慙於卽事.

種繇와 張芝의 專擅을 詳考함에 비록 前規를 능가한다고 할 수 없으나, 취해서 겸하여 통하여도 일상의 용무에 부끄러워함이 없다.

5.評者云.彼之四賢.古今特絶.而今不逮古.古質而今姸.夫質以大興.姸因俗易.雖書契之作.適以記言.而淳醨一遷.質文三變.馳騖沿革.物理常然.貴能古不乖時.今不同獘.所謂文質彬彬.然後君子.何必易雕宮於穴處.反玉輅於椎輪者乎.

비평가들이 말하기를,“저 四賢은 고금에 뛰어나서 지금이 옛 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옛 것은 질박하고 지금은 곱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대저 질박(質朴)함은 크게 흥하고 연미(姸媚)함은 세속으로 인하여 바뀐다. 비록 書契가 만들어져 마땅히 말을 기록하더라도 醇(淳)醨가 한번 바뀌고 質文이 여러 번 바뀐다. 달려온 연혁은 변하지 않는 사물의 이치이다. 능히 옛 것이 때에 어긋나지 않고 지금에 폐단을 같이 하지 않음을 귀하게 여긴다. 이른바, “文과 質이 알맞게 섞긴 뒤에 君子이다.”라고 하니, 어찌 반드시 雕宮을 穴處로 바꾸고 玉輅를 椎輪에 바꾼 자이겠는가?  

   

6.又云子敬之不及逸少.猶逸少之不及種張.意者以爲評得其綱紀.而未詳其始卒也.且元常專工於隸書.百英尤精於草體.彼之二美.而逸少兼之.擬草則餘眞.比眞則長草.雖專工小劣.而博涉多優.摠其終始.匪無乖互.

또 말하기를, “子敬(獻之)가 逸少(羲之)에 미치지 못함은 逸少(羲之)가 鐘․張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그 綱紀를 평함을 얻었음에도 그 처음과 마침에 자세하지 못했다. 또한 元常(種繇)은 오로지 隸書에 능하고 百英(張芝)은 더욱 草書에 뛰어났다. 그 두 사람의 좋은 점을 逸少는 겸하였다. 草書를 헤아리면 楷書에 여유 있고 楷書를 비교하면 草書에 장점이 있다. 비록 전공한 것에 조금 부족하나 널리 섭렵(涉獵)함에 다소 우수하다. 그 始終을 종합해보면 어긋난 점이 없지 않다.   

 

7.謝安素善尺牘.而輕子敬之書.子敬嘗作佳書與之.謂必存錄.安輒題後答之甚以爲恨.安嘗門敬.卿書何如右軍.答云故當勝.安云物論殊不爾.子敬又答.時人那得知.敬雖權以此辭.折安所鑒.自稱勝父.不亦過乎.且立身揚名.事資尊賢.勝母之里.曾參不入.以子敬之豪翰.紹右軍之筆札.雖復粗傳楷則.實恐未克箕裘.况乃假託神仙.恥崇家範.以斯成學.孰愈面牆.後羲之往都.臨行題壁.子敬密侙除之.輒書易其處.私爲不惡.羲之還見.乃歎曰.吾去時眞大醉也.敬乃內慙.是知逸少之比種張.則專博斯別.子敬之不及逸少.無或疑焉.

謝安은 본래 尺牘에 능하여 子敬의 書를 輕視하였다. 子敬이 일찍이 좋은 글을 써서 謝安에게 주었다. 반드시 보존할 것으로 여겼는데 謝安이 문득 題한 후에  답을 하여 매우 한탄하였다. 謝安이 일찍이 子敬에게 묻기를, “卿의 書가 右軍(王羲之)에 견주어 어떠한가?” 라고, 답하여 이르기를, “그야 당연히 우수하다.” 謝安이 이르기를, “物(衆)論은 전혀 다른지 않는가?” 라고 子敬이 또한 이르기를, “지금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子敬은 비록 權道로 이 말로써 謝安의 감식하는 안목을 꺾었다고 할 수 있으나 스스로 아버지 보다 우수하다고 칭한 것은 또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또한 立身하여 名을 떨치는 것은 부모를 존귀하게 하여 드러나게 하는 것이오, ‘勝母’라는 洞里에 曾參은 들어가지 않았다는 고사가 있다. 子敬의 豪(毫)翰은 右軍의 筆札을 이었다. 비록 다시 대략 楷則(書法)을 傳承하였다 할지라도 실로 생각건대 가업(箕裘: 家業)을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하물며 神仙을 假託하여 家範을 숭상함에 욕되게 했다. 이로써 학을 성취함은 벽에 부딪치는 것과 무엇이 나으리요.

후에 王羲之가 서울에 갈 때 출발에 임하여 벽에 글을 써놓았다. 獻之는 몰래 그 필적을 닦아 없애고 곧 그곳에 바꿔 써두고 자기 생각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羲之가 돌아와 보고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 떠날 적엔 많이 취했도다.”라고 獻之가 비로소 내심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이로 알 수 있듯이 逸少(羲之)를 鐘․張을 비교한다면 一體專修와 諸體兼修의 차이는 이에 구별되고 子敬이 逸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혹시라도 의심이 없으리라.

 

 

나. 書의 本質과 價値

8.余志學之年.留心翰墨.味種張之餘烈.挹羲獻之前規.極慮專精.時逾二紀.有乖入木之術.無間臨池之志.

 내가 지학(志學: 十五歲)의 해에 뜻을 한묵(翰墨)에 유념하여 種․張의 여열(餘烈: 墨蹟)을 吟味하고 羲․獻의 전규(前規: 書法)을 취하는 등 생각를 다하고 전심으로 정진 하기를 이기(二紀: 二十四年)을 경과하였다. 入木之術(書道)에 어긋남이 있을지라도 임지(臨池: 池水를 먹물로 변하게 하여 書道에 熱中했다는 張芝의 意志)의 意志에 중단하는 일은 없었다.  

 

9.觀夫懸針垂露之異.奔雷墜石之奇.鴻飛獸駭之資.鸞舞蛇驚之態.絶岸頹峯之勢.臨危據橋之形.或重若崩雲.或輕如蟬翼.導之則泉注.頓之則山安.纖纖乎似初月之出天崖.落落乎猶衆星之列河漢.同自然之妙有.非力運之能成.信可謂智巧兼優.心手雙暢.翰不虛動.下必有由.一畫之間.變起伏於峯杪.一點之內.殊衄挫於豪芒.

대저 현침수로(懸針․垂露)의 다름, 분뢰추석(奔雷․墜石)의 기이함, 홍비수해(鴻飛․獸骸)의 자태, 절안퇴봉(絶岸․頹峯)의 형세와 임위거고(臨危․據高)의 형상을 관찰함에 간혹 중후한 것은 무너지는 구름과 같고, 간혹 가벼운 것은 매미의 날개와 같다. 이를 이끌어 샘물을 머물게 하고, 이를 머물게 하면 산과 같이 편안 하도다. 가늘하기가 초승 달이 하늘 끝에서 나오는 것 같고, 떨허지기가 무수한 별들이 은하를 이룬 것과 같다.  自然의 묘유(妙有: 原始存在)와 같아서 인력으로 운용하여 능히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진실로 지혜와 기교가 겸하여 우수하고 심경과 팔꿈치가 서로 통하여 翰(붓)을 헛되이 움직이지 않고 下筆에 까닭(根據)이 있고 一畫 사이에 起伏을 붓 끝에서 변하고 一點의 안에 衄挫(점)을 호망(毫芒)에 달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10.况云積其點畫.乃成其字.曾不傍窺尺牘.俯習寸陰.引班超以爲謝.援項籍而自滿.臨筆爲體.聚墨成形.心昏擬効之方.手迷揮運之理.求其妙姸.不亦謬哉.

하물며 이르기를, “그 點畫을 거듭한다면 이에 그 글자를 이룬다. 일찍이 尺櫝을 엿보고 잠시도 엎드려 익히지 않고, 반초(班超)를 인용하여 말로 삼으며 항적(項籍)을 원용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먹물을 모아 모양을 이룬다. 마음이 의효(擬效: 模倣)의 방법에 혼미하며 손은 揮運의 이치에 미혹하고, 그 姸妙함을 추구한다는 것이 또한 그릇된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11.然君子立身.務修其本.楊雄謂.詩賦小道.壯夫不爲.况復溺思豪氂.淪精翰墨者也.

그러나 君子의 立身은 힘써서 그 근본을 닦는 것인데 楊雄이 이르기를, “詩賦는 小道라 장부도 하지 않는다.”라고 한데, 하물며 다시 생각을 붓 끝에 眈溺하여 한묵(翰墨)에 정력을 빠뜨리는 者에 있어서 인가? 

 

12.夫潛神對奕.猶標坐隱之名.樂志垂綸.尙體行藏之趣.詎若功宣禮樂.妙擬神仙.猶挻埴之罔窮.與工鑪而並運.好異尙奇之士.翫體勢之多方.窮微測妙之夫.得推移之奧賾.著述者假其糟粕.藻鑑者揖其菁華.固義理之會.信賢達之兼善者矣.存精寓賞.豈徒然與.

정신을 가다듬어 바둑에 대하더라도 오히려 좌은(坐隱)의 이름을 표하며 자기의 뜻을 즐기며 낚시 줄을 드리움에 오히려 행장(行藏)의 나감을 체험한다. 어찌 공을 들여 예악(禮樂)을 드러내고 묘미(妙味)를 신선에 비기겠는가? 오히려 挺埴(: 陶器를 빚음)이 다함이 없고 工鑪(:鑄物을 만듦)와 더불어 함께 運用하는 것과 같다. 특이함을 좋아하고 기이함을 숭상하는 선비는 서의 결체와 필세의 다방면을 즐기고 미요(微妙)함을 궁리하고 헤아리는 자는 운필의 변화에 奧賾(: 深奧)함을 얻고자 한다. 저술자는 그 糟粕(: 쓸모 없는 것)함을 빌리나 藻鑑(: 鑑賞)하는 자는 그 菁華(: 精粹)를 퍼낼 것이다. 진실로 義理에 귀의함에는 참으로 현달함을 겸하여 능한 사람이니라. 한묵(翰墨)에 정신을 쏟아 감상에 부치는 것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는가?    

   

13.而東晉士人.互相陶淬.至於王謝之族.郗庾之倫.縱不盡其神奇.咸亦揖其風味.去之滋永.斯道逾微.方復問疑稱疑.得末行末.古今阻絶.無所質問.設有所會.緘祕已深.遂令學者茫然莫知領要.徒見成功之美.不悟所致之由.

그러나 東晉의 士人은 상호 陶淬(: 感化薰染)하여 王․謝氏의 일가와 郗․庾氏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비록 그 신기(神奇)를 다하지 못했으나 모두 또한 그 풍미(風味)를 얻었다. 時代가 갈수록 더욱 오래되어 斯(: 書)道가 더욱 쇠미해졌다. 바야흐로 다시 의심난 것을 듣고 그 것을 칭하고 말초적인 것을 얻어 그 것을 행하여 古今에 전해지는 것이 없어 물어 볼 바가 없다. 설령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緘祕(: 침묵을 지켜 말하지 않음)가 이미 심하였다. 마침내 학자로 하여금 망연히 요령을 알지 못하고 한갓 성공의 아름다움을 보며 지극한  바의 까닭을 깨 달지 못하였다.    

 

 

14.或乃就分布於累年.向規矩而猶遠.圖眞不悟.習草將迷.假令薄解草書.粗傳隸法.則好溺偏固.自閡通規.詎知心手會歸.若同源而異派.轉用之術.猶共樹而分條者乎.

혹은 여러 해 동안 분포(分布: 布白)를 취하였으나 규거(規矩: 書法)에 향하여서는 오히려 멀고, 진서(眞書: 楷書)를 쓰나 깨닫지 못하고 초서(草書)를 익혔으나 장차 미혹될 뿐이다. 가령 초서를 널리 알고 대략 예법(隸法: 楷書)을 傳受하였더라도 심하게 치우쳐 나쁜 버릇에 빠지며 스스로 통규(通規: 올바른 서법)를 폐하였다. 심수회귀(心手會歸: 정신과 기교와의 일치)는 근원을 같이하고 지류가 파생을 달리 함과 같이 전용(轉用: 용필의방법)의 기술은 나무를 같이하나 가지를 나누는 것과 같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15.可以趍變吏適時.行書爲要.題勒方복.眞乃居先.草不兼眞.殆於專謹.眞不通草.殊非翰札.

관리의 일상 업무 시에 행서가 중요하고 제액(題額)이나 금석비류(金石碑類)와 편폭(偏幅)에 쓰는 것은 해서를 먼저 한다. 초서가 진서(眞書: 해서)를 겸하지 못하면 아마도 전근(專謹: 端正)한 書에 위태롭고, 해서가 초서에 통하지 못하면 전혀 한찰(翰札)을 쓸 수 없다. 

 

16.眞以點畫爲形質.使轉爲情性.草以點畫爲情性.使轉爲形質.草乖使轉.不能成字.眞虧點畫.猶可記文.迴互雖殊.大體相涉.

진서(眞書)는 점획(點畫)으로 자형의 바탕이 되고 사전(使轉)으로 情性을 나타내며, 초서(草書)는 點畫으로 情性이 되고 使轉으로 자형의 바탕이 된다. 초서가 使轉에 어그러지면 능히 자형을 이루지 못하나 草書는 點畫을 이지러지더라도 오히려 문을 기록할 수 있다. 회호(廻互: 轉換)가 비록 다르나 대체로 상섭(相涉: 相關)한다.  

17.故亦傍通二篆.俯貫八分.包括篇章.涵泳飛白.若豪氂不察.則胡越殊風者焉.至如種繇隸奇.張芝草聖.此乃專精一體.以致絶倫.

그리하여 또한 이전(二篆: 大篆․小篆)에 능통하여 팔분(八分: 隸書)에 관통하고, 편장(篇章: 문장의 구절)을 포괄하여 飛白에 함영(涵泳: 무졌어 들음)할 것이다. 만약 터럭을 살피지 못했다면 호월(胡․越)과 같은 다른 풍습과 같으리라. 종요(種繇)의 예서의 기묘함과 장지(張芝)의 草聖은 이는 곧 一體(鐘․張)에 정진함으로 絶倫에 이르렀다. 

 

18.伯英不眞.而點畫狼藉.元常不草.使轉從橫.自玆已降.不能兼善者.有所不逮.非專精也.

백영伯英: 張芝)은 眞書가 本領은 아니나 點畫은 낭자(狼藉: 어지러움)하고 원상(元常: 種繇)은 草書가 本領은 아니나 使轉이 종횡(縱橫: 자유자재)으로 구사하고 이로부터 이미 내려옴에 능히 眞草를 겸하여 능하지 못한 것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며 전심으로 정진(精進)하지를 않았다.  

 

19.雖篆隸草章.工用多變.濟成厥美.各有攸宜.篆尙婉而通.隸欲精而密.草貴流而暢.章務檢而便.然後.凜之以風神.溫之以姸潤.鼓之以枯勁.和之以閑雅.故可達其情性.形其哀樂.驗燥濕之殊絶.千古依然.體老壯之異時.百齡俄頃.嗟乎不入其門.詎窺其奧者也.

비록 篆․隸․草․章은 工用이 다변하나 그 美를 이룸에 각기 마땅한 바가 있다. 篆는 오히려 완곡(婉曲)하나 통함을 숭상하고, 隸는 정밀하고자 하고, 草는 유창(流暢)하기를 귀히 하고 章은 檢束하고 간편함에 힘쓴다. 그러한 연후에 風神(: 字의 氣韻)으로 름름하게 하고, 연윤(姸潤: 文采와 潤澤)으로 따뜻하게 하며, 고경(枯勁: 굳셈)으로 격동시키고, 한아(閒雅: 高雅)함으로 調和롭게 한다. 그리하여 그 정상(情性)에 통달하고 그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 조습(燥濕: 季節變化)의 다른 계절을 겪으나 千古에 의연하고, 노장(老壯: 人間生涯)의 다름을 체험하나 百年이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오호라! 그 문에 들지 못하면 어찌 그 오묘(奧妙)함을 엿볼 수 있겠는가?    

 

20.又一時而書.有乖有合.合則有美.乖則彫疎.略言其由.各有其五.神怡務閑一合也.感惠徇知二合也.時和氣潤三合也.紙墨相發四合也.偶然欲書五合也.心遽體留一乖也.意違勢屈二乖也.風燥日炎三乖也.紙墨不稱四乖也.情怠手闌五乖也.乖合之際.優劣互差.得時不如得器.得器不如得志.若五乖同萃.思遏手蒙.五合交臻.神融筆暢.暢無不適.蒙無所從.

한때 글을 씀에 乖와 合이 있나니, 합하면 유려(流麗)함이 있게 되고 일그러지면 조소(彫疎)하게 된다. 간략히 그 까닭을 말하면 각기 다섯 가지가 있다. 정신이 기쁘고 일이 한가함이 一合이요, 인자함에 감동하고 知(智)를 쫓는 것이 二合이요, 천기가 온화(溫和)하고 대기에 윤기(潤氣)가 있는 때가 三合이요, 紙․墨이 서로 깃들 때가 四合이요, 우연히 글을 쓰고자 함이 五合이다. 마음은 급하나 몸이 머무는 것이 一乖요, 생각이 다르고 기세가 꺾였을 때가 二乖요, 바람이 메마르고 炎天일때가 三乖요, 紙․墨이 서로 알맞지 못할 때가 四乖요, 감흥은 있으나 손이 늦을 때가 五乖다. 乖․合의 때는 우열이 서로 차이가 있다. 때를 얻음이 器才를 얻음과 같지 못하고, 器才를 얻음은 意志를 얻음과 같지 못하다. 만약 五乖가 함께 모인다면 생각은 막히고 손은 움직이지 못하고, 五合이 서로 이르면 정신이 융화(融和)하고 붓은 유창(流暢)할 것이다. 流暢하면 不適함이 없고, 蒙昧하다면 쫓을 바가 없다. 

         

다. 六朝以來 書論에 대하여

21.當仁者得意忘言.罕陳其要.企學者希風敍妙.雖述猶疎.徒立其工.未敷厥旨.不揆庸昧.輒効所明.庶欲弘旣王之風規.導將來之器識.除繁去濫.覩迹明心者焉.

당인자(當仁者: 書道를 體得한 鐘張二王)는 뜻을 얻으나 말을 잊고. 그 要訣을 펼치는 것이 드물다. 서를 배우고자 하는 자는 風趣를 바라고 絶妙함을 펼치고 비록 서술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소원(疏遠)하다. 다만 그 공(工: 技巧)을 세우지마는 그 뜻(眞髓 :진수)을 펴지는 못한다. 凡庸愚昧를 헤아리지 못하고 문득 명백히 할 바를 본받는다. 旣往의 書風을 넓히고자 하여 장래의 기량과 식견을 인도할 것을 바란다. 번잡하고 과잉(過剩)한 부분을 제거한다면 선현의 명적(名蹟)을 보고 마음을 밝게 할 자가 있을 것이다.     

 

22.代有筆陣圖七行.中畫執筆三手.圖貌乖舛.點畫湮訛.頃見南北流傳.疑是右軍所製.雖則未詳眞僞.尙可發啓童蒙.旣常俗所存.不籍編錄.

세간에 ‘筆陣圖’ 七行이 있었다. 그 중에 붓을 잡는 三手가 그려져 있는데 그림 모양이 일그러지고 점획(點畫)은 낡아서 분별하기 어렵다. 근래 남북으로 유포된 것을 보면 이는 右軍이 제작한 듯하니 眞僞가 자상하지 않으나 오히려 동몽(童蒙: 兒童)들을 계발할 수 있으리라. 이미 항상 세속에 있으므로 編錄을 憑藉하지 않는다.

23.至於諸家勢評.多涉浮華.莫不外狀其形.內迷其理.今之所撰.亦無取焉.

諸家의 서세(書勢: 蔡邕의 九勢等)와 서평(書評: 梁武帝의 評書等)에 이르러서 부화(浮華)에 많이 섭렵하고, 밖으로 그 형태를 형상화하지 않음이 없고 안으로는 그 이치에 혼미하니, 지금 지은 것을 또한 취할 바가 없다. 

 

24.若乃師宜官之高名.徒彰史牒.邯鄲淳之令範.空著縑緗.曁乎崔杜以來.蕭羊已往.代祀緜遠.名氏滋繁.或藉甚不渝.人亡業顯.或憑附增價.身謝道衰.可以糜蠹不傳.搜祕將盡.偶逢緘賞.時亦罕窺.優劣紛紜.殆難覶縷.其有顯聞當代.遺跡見存.無俟抑揚.自標先後.

이에 師宜官의 高名이 다만 사첩(史牒)에 나타나고 감단순(邯鄲淳)의 훌륭한 규범(規範: 書法)도 겨우 겸겸상(縑緗: 書籍)에 드러났다. 최원.두도(崔婉․杜度)와 더불어 그 이래로 소자운.양흠(蕭子雲․羊欣)에 이르기까지 年代가 멀리 지났어도 저명한 서가가 더욱 번성하였다. 혹은 자심(滋甚: 성함)에는 변하지 않고, 사람이 죽은 후에도 업적은 나타났다. 혹은 명성을 빙자하여 평가(評價)를 더하더라도 사후에는 도(道: 評價)가 쇠퇴하기도 한다. 책이 좀먹고 문 들어져 전해지지 못한다면 祕藏品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우연히 함상(緘賞: 鑑賞)할 기회를 만나더라도 때로는 엿보기도 어렵다. 우열이 일치하지 않아 그 당대에 문명(聞名)이 드러남이 있고 유적(遺迹)이 나타남에 억양(抑揚: 世人之批評)을 기다릴 것 없이 스스로 先後를 표방(標榜)할 것이다.

 

25.且六文之作.肇自軒轅.八體之興.始於嬴正.其來尙矣.厥用斯弘.旦今古不同.姸質懸隔.旣非所習.又亦略諸.

또한 육문(六文: 六書)의 지은 것은 헌원(軒轅)으로부터 비롯되었고 八體의 일어남은 영정(嬴正: 秦始皇)의 시기에 시작됐다. 그 내력은 오래되고 그 용도는 광범위 하다. 다만 지금과 옛날에 갖지를 않아 연질(姸質)이 현격히  다르다. 이미 익힌 바가 아니면 또한 그 것을 간략히 했다.     

  

26.復有龍蛇雲露之流.龜鶴花英之類.乍圖眞於率爾.或寫瑞於當年.巧涉丹靑.工虧翰墨.異夫楷式.非所詳焉.

또한 용서.사서.운서.로서(龍書․蛇書․雲書․露書)의 類와 구서.학서.영화서(龜書․鶴書․花英書)의 종류가 있었으니, 잠깐사이 실체를 간략하게 그리고 혹은 그 당시의 서상(瑞祥)을 묘사했다. 기교는 단청(丹靑)을 섭렵하고 공용은 한묵(翰墨)에는 결함이 있다. 저 해식(楷式: 書法)과 달라서 상론(詳論)할 바가 아니다.

 

27.代傳羲之與子敬筆勢論十章.文鄙理疎.意乖言拙.詳其旨趣.殊非右軍.且右軍位重才高.調淸詞雅.聲塵未泯.翰櫝仍存.觀夫致一書陳一事.造次之際.稽古斯在.豈有貽謀令嗣.道叶義方.章則頓虧.一至於此.

세상에 전해지고 있는 羲之가 자경(子敬 :獻之)에게 주었다고 하는 「筆勢論十章」이 문장은 통속적이고 논리는 소략(疏略)하고, 뜻은 어긋나고 말은 졸렬(拙劣)하다. 그 志趣를 자세히 상고하니 전혀 우군(右軍)이 지은 것이 아니다. 右軍의 지위는 중하고 재주는 고상하며 풍격은 청준(淸俊)하고 사장(詞章)은 우아하여 그 명성의 자취가 민멸(泯滅)하지 않았고, 한독(翰櫝: 筆跡)은 그대로 보존되었다. 일서를 다하고 일사를 開陳하는 것을 관찰하면 급한 때에도 고법을 생각함이 이에 있다. 어찌 모사(謀事: 書)를 영사(令嗣: 長男.獻之)에게 남기는데 서도는 바른 규범規範)에 합당하고 문장에 흠결(欠缺)이  이에 이르겠는가?  

 

   

28.又云.與張伯英同學.斯乃更彰虛誕.若指漢末伯英.時代全不相接.必有晉人同號.史傳何其寂廖.非訓非經.宜從棄擇.

또한 필세론(筆勢論)에 이르기를, “張伯英과 함께 書를 공부했다.”라고 하나 이는 바로 다시 허탄(虛誕)함을 드러냈다. 만약 한말의 伯英을 가리킨다면 시대가 전혀 서로 맞지 않는다. 반듯이 진(晉)나라 사람의 동호(同號) 인이 있었다면 史傳에 어찌 보이지 않겠는가? 訓과 經이 아니다면 가려 버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라.執使用轉의 說 및 王書의 價値

29.夫心之所達.不易盡於名言.言之所通.尙難形於紙墨.粗可髣髴其狀.綱紀其辭.冀酌希夷.取會佳境.闕而未逮.請俟將來.

무릇 마음이 도달하는 곳은 명언을 쉽게 다할 수 없고. 말이 통하는 곳은 오히려 종이와 먹물에 나타내기 어렵다. 대강 그 형상을 비슷하게 하고. 그 말은 法綱과 風紀와 같다. 바라건대 희이(希夷)를 참작하여 서의 가경(佳境)을 얻어 흥회(興會)하고 빠뜨려 미치지 못하는 것은 바라건대 장래를 기다려라.

 

30.今撰執使用轉之由.以祛未悟.執謂深淺長短之類是也.使謂縱橫牽掣之類是也.轉謂鉤鐶盤紆之類是也.用謂點畫向背之類是也.方復會其數法.歸於一途.編列衆工.錯綜群妙.擧前賢之未及.啓後學於成規.窮其根源.析其枝派.貴使文約理贍.迹顯心通.披卷可明.下筆無滯.詭詞異說.非所詳焉.

지금에 執․使․用․轉의 까닭을 지어서 깨닫지 못한 자를 거(祛: 啓蒙)고자 하노라. 執이란 深淺을 이르니 長短의 類가 이것이요, 使란 縱橫을 이르니 牽掣의 類가 이것이요, 轉이란 鉤鐶을 이르니 屈曲盤紆의 類가 이것이요, 用이란 點畫을 이르니 向背의 類가 이것이다. 바야흐로 다시 이 수법을 깨달아 一途(書道)에 歸着시키고, 많은 技巧를 편열(編列: 體系化)하고 많은 妙趣를 착종(錯綜)함이니라. 前賢의 미치지 못하는 것을 들어서 後學들에게 성규(成規: 法度)를 열고 그 근원을 연구하고 그 지류(枝流)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문은 간략하고 도리는 넉넉하고 자취는 드러나고 마음은 통하여, 책을 잡으면 밝게 하고 붓을 들면 막힘이 없는 것을 귀히 여기게 했다. 궤사(詭詞)나 이설(異說)은 자세히 논할 바가 아니다.  

 

31.然今之所陳.務裨學者.但右軍之書.代多稱習.良可據爲宗匠.取立指歸.豈唯會古通今.亦乃情深調合.致使摹搨日廣.硏習歲滋.先後著名.多從散落.歷代孤紹.非其効歟.

그러나 지금에 서술하는 것은 힘써서 서를 배우는 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함이다. 다만 우군(右軍)의 서는 역대로 많이 칭양(稱揚)하여 익히니, 진실로 종장(宗匠)으로 삼은 것에 의거하여 지귀(指歸: 終着點)를 세울 것이다. 어찌하여 오직 옛 것을 깨달아 지금에 통할 뿐이요 또한 이에 정이 깊고 조화에 합치되기 때문이다. 모탑(摹搨)을 하여 날로 퍼지고 연구하여 익힘이 해마다 불어났다. 왕희지(王羲之)의 전후에 저명(著名)한 사람의 필적은 많이 흩어지고 역대로 홀로 이은 것은 右軍의 효과가 아니겠는가?     

 

32.試言其由.略陳數意.止如樂毅論․黃庭經․東方朔畫讚․太師箴․蘭亭集序․告誓文.斯並代俗所傳.眞行絶致者也.

시험적으로 그 까닭을 여러 뜻을 개략으로 서술하면 다만 「樂毅論」․「黃庭經」․「東方朔畫讚」․「太師箴」․「蘭亭集序」․「告誓文」.과 같은 것이니, 이는 나란히 대속(代俗: 世俗)에 전해진 것이니 楷書와 行書에 극치를 다하고 있다.  

 

33.寫樂毅則情多怫鬱.書畫讚則意涉瓌奇.黃庭經則怡懌虛無.太師箴又從橫爭折.曁乎蘭亭興集.思逸神超.私門誡誓.情拘志慘.所謂涉樂方咲.言哀已歎.

「樂毅論」을 베끼는데는 정에 불울(怫鬱)이 많고,「東方朔畫讚」을 쓰면 뜻이 회기(瓌奇: <瑰奇>기이한 것)에 섭렵하며,「黃庭經」은 허무속에 이역(怡懌)이 있고,「太師箴」은 또한 종횡으로 굴절을 다투며, 「蘭亭集序」의 興集에 이르러서는 사일(思逸)하고 神超하며 私門의 계서(誡誓)인「告誓文」엔 情이 拘束되고 뜻이 참담(慘憺)하다. 즐거울 때는 바야흐로 웃고 슬픔을 말하면 이미 탄식한다.

    

 

<출처 : 학운재글방>
출처 : 思霓堂 의 행복사랑방
글쓴이 : 思霓堂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