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멍석작/ 빛 (종이에 수묵, 물감)
아내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소주병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 거리나
쓰레기장에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폭설
술집과 노래방을 거친
늦은 귀가길
나는 불경하게도
이웃집 여자가 보고싶다
그래도 이런 나를
하나님은 사랑하시는지
내 발자국을 따라오시며
자꾸 자꾸 폭설로 지워주신다
별 국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말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굴물 속에 떠 있는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히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말똥 한 덩이
청계천 관광마차를 끄는 말이
광교 위에 똥 한 덩이를 퍽! 싸 놓았다
인도에 박아놓은 화강암 틈으로
말똥이 퍼져 멀리 멀리 뻗어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잘게 부순 풀잎 조각들
풀잎이 살아나 퇴계로 종로로 뻗아가고
무교동 인사동 대학로를 덮어간다
건물 풀잎이 고층으로 자라고
자동차 딱정벌레가 떼 지어 다닌다
전철 지렁이가 땅속을 헤집고 다니고
사람 애벌레가 먹이를 찾아 고물거린다
폭설 아침
부드러운 눈이
꼿꼿한 대나무를 모두 휘어놓았습니다.
소나무 가지를 찢어놓고
강철로 만든 차를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크고 작은 지붕들을
폭 덮어 평등하게 만들었습니다
개 한 마리 함부로 짖지 않고
쥐새끼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따악 !
앞산에서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 한 번
고요가 모두를 이긴
폭설 아침입니다
잃어버린 문장
푸장나무 향기가 풋풋한 마당
쑥대를 태우며
밀대방석에서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별과 별을 이어가며 썼던 문장이 뭐였더라?
한 점 한 점 보석으로 박아주던 문장
어머니의 콧노래를 받아 적던 별의 문장
푸장나무도 없고 쑥대도 없어
밀대방석을 만들던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 무릎마저 없어
하늘공책을 펼칠 수도 읽을 수도 없는 문장
별과 별을 이어가던 문장이 뭐엿더라?
한 점 한 점 보석으로 박아주던 그 문장이.
사랑
새를 사랑하기 위하여
조롱에 가두지만
새는 하늘을 빼앗긴다
꽃을 사랑하기 위하여
꺾어 화병에 꽂지만
꽃은 이내 시든다
그대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 마음에 그물 쳤지만
그 그물 안에 내가 걸렸다
사랑은 빼앗기기
시들기
투망 속에 갇히기

- 출생
- 1960년 6월 15일 (충청남도 청양)
- 학력
-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
- 데뷔
- 1986년 시 '저녁1'
- 수상
-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