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도구로 생각하여 계속적인 연구를 해 온 것이다.
이와 같은 한글에 대한 연구는 그 동안 학술적으로는 매우 큰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실용화 연구는 학술적인 연구에 비해 매우 뒤쳐진 감이 없지 않다. 특히 한글의 실용화 단계에서 예술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다른 부문에 비해 뒤쳐져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많은 도구들, 예컨대 한글을 쓰기 위한 도구들의 예술화는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우리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담고 있는 한글의 예술화는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를 언어학적인 바탕이 아닌 자형이나 서체의 관점에서 관찰하고, 그 자형이나 서체의 변천 과정을 훈민정음 창제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조감하는 일은 앞으로 현대의 한글 자형이나 서체를 시각·조형적으로 실용화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훈민정음 창제에서부터 19세기말까지의 한글 자형의 변천 과정을 조감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서체에 대한 언급은 가급적 피하도록 한다. 여기에서 분명히 밝혀 두어야 할 개념이 있다. 그것은 자형(字形)과 자체(字體) 및 서체(書體)에 대한 개념이다. 이들 용어는 모두 글자의 모양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자체나 서체는 글자의 체(體)로서 해서체(楷書體)·예서체(隸書體)·명조체(明朝體) 등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형이란 엄밀히 말해 자체 또는 서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자형이란 글자 하나의 모양과 관련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서체란 글자들의 집합과 관련된 개념이다. 그러므로 글자 하나만으로는 서체를 언급하기 어렵다. 예컨대 ‘탈네모체’로 만들어진 ‘가’ 글자 하나로서는 그것이 탈네모체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 모양이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틀 안에 들어가는 글자인지는 다른 글자와 비교해 봄으로써 그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자형은 그렇지 않다. 한 글자의 모양만으로도 그 글자의 자형을 언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는 음절글자들의 조합 관계를 다루지 않고, 주로 한 음소글자의 모양만을 다루게 될 것이다.
한글의 자형과 서체는 한글 사용의 목적이나 도구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변화하여 왔다. 즉 글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일반 인쇄체의 한글에서부터 인장에 사용되는 한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붓이나 연필, 또는 펜으로 쓰는 한글의 자형이나 서체로부터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한글에 이르기까지 그 자형과 서체가 매우 다양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현대의 한글 서체는 한글이 지니고 있는 기하학적·조형적 특징을 살려 다양하게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컴퓨터의 보급으로 인하여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한글 서체의 개발이 매우 활발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이 사용된 역사상 이렇게 다양하고 아름다운 서체가 많이 개발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서체의 개발 과정에서 한글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자형을 크게 변모시키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이러한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글 자형을 크게 훼손시켜 개발된 서체는 이미 한글 서체의 개념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한글 서체를 개발하면서 한글 자형의 변이를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글 사용자들이 한글의 변형을 얼마나 인정하는가 하는 사용자의 인식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한글 자모의 변이 허용의 한계는 아직까지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줄 수 있는 출발점은 한글 자형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글 서체의 변화에 대하여서는 많은 연구 업적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대개 흔히 알려진 한정된 수와 종류의 한글 문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한 자형의 변화가 아닌, 서체의 변화에 대한 것이어서 한글 자형 변이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정밀하게 검토하였다고 하기 어렵다. 이러한 연구는 주로 서예가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 왔고, 그래서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간행되거나 필사된 수많은 한글 문헌들에 대한 지식이 적은 상태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던 관계로, 그 연구 대상으로 된 문헌들의 수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글 자형이나 한글 서체에 대한 국어국문학자의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국어사 전공자로서 비교적 많은 문헌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시간 부족으로 인하여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 간행된 수많은 문헌 전반에 나타나는 한글의 서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한글 문헌 목록은 작성하여 놓았지만, 각 문헌의 한글 한 글자 한 글자를 면밀히 검토하여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었다. 마침 ‘21세기 세종계획’(국어 정보화 중장기 발전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글꼴개발원’이 설립되고, 이 글꼴개발원의 계획으로 15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 간행된 문헌 중에서 한글 자형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헌이라고 생각되는 약 70여 종의 문헌을 대략적으로 검토하여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한글 자형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표로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일종의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한글 자형의 변천사나 서체의 변천사에 대한 자료집은 다음과 같이 자료가 충분히 검토된 뒤에 이루어질 수가 있을 것이다.
(1) 한글 자형의 변화는 다음과 같이 문헌을 분류하여 검토하여야 한다. 즉 판본과 필사본으로 구분하여 검토하여야 한다. 판본과 필사본은 그 자형이나 서체에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본도 금속활자본과 목활자본, 목판본, 그리고 연활자본 등으로 구분하여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2) 한글 자형의 변화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21세기 초인 현대까지 간행되거나 필사된 자료를 대상으로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한글 자형의 변천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글 자형이나 서체는 20세기 초에 와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20세기 초의 자료들에 대한 검토가 면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한글 자형의 변화에 대한 연구는 최소한 약 500여 종의 한글 문헌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하지 않고 검토하였다. 우선 필사본은 검토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그리고 15세기부터 19세기말까지 간행된 문헌만을 대상으로 하였고, 그것도 약 70여 종의 한글 문헌에 한정시켰다. 따라서 이 글은 한글 자형의 변천을 간략하게 검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2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한글 문헌을 통해 한글 자형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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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음 :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ㅌ ㅍ ㅎ |
① ㄱ ‘ㄱ’ 자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서체의 변화는 있었지만 자형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일반적으로 15세기 당시에는 초성자에 쓰인 ‘ㄱ’이든 종성자로 쓰인 ‘ㄱ’이든 차이가 없었다. 물론 그 크기에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극’은 초성의 ‘ㄱ’과 종성의 ‘ㄱ’이 크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 글자를 뒤집어 놓으면 ‘는’과 동일한 글자가 되었다. 그러나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종성자로 쓰인 ‘ㄱ’ 자의 크기가 달라지게 되었다. ‘극’ 자의 경우에는 초성에 쓰인 ‘ㄱ’보다도 종성에 쓰인 ‘ㄱ’의 크기가 조금 크게 변화되었다. 그래서 ‘극’을 뒤집어 놓은 모습이 ‘는’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글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ㅏ, ㅑ, ㅓ, ㅕ’ 밑에 쓰인 ‘ㄱ’자는 글자의 크기가 더욱 작아졌다. 그리하여 ‘각’에서 초성 ‘ㄱ’에 비하여 종성 ‘ㄱ’의 크기가 상당히 작아졌다. 그러나 자형에는 변화가 없었다. ‘ㄱ’자의 자형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모음자 ‘ㆍ’와 결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16세기에 들어서서 변화된 것이다. 즉 ‘?’는 ‘?’로 변화하여서 ‘ㄱ’의 세로줄기는 왼쪽으로 구부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1514년에 간행된 ≪속삼강행실도≫에 처음 나타나며, 그 뒤로 1612년에 함흥에서 간행된 ≪연병지남≫ 등에 이어져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두 가지 자형이 병존하였다. ‘ㄱ’이 ‘ㅏ, ㅓ, ㅑ, ㅕ’ 등의 앞에서 오늘날과 같은 ‘가’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다. 즉 1852년에 최성환에 의해 간행된 ≪태상감응편도설언해≫에 처음 보인다. 그 이후로 모음이 오른쪽에 올 때의 ‘ㄱ’은 오늘날의 ‘가’에 보이는 ‘ㄱ’과 같은 자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② ㄴ ‘ㄴ’은 오늘날까지도 거의 변화가 없는 글자 중의 하나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ㄴ’은 왼쪽의 세로줄기나 아래의 가로줄기나 그 길이가 거의 동일하였었다. 특히 모음이 오른쪽에 올 때에는 더욱 그러하였다(예: 나). 그러나 모음이 아래에 올 때에는 왼쪽의 세로줄기 길이가 가로줄기보다 짧았었다(예: 노, 느).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이후에 간행된 모든 문헌이 이 원칙에 따랐다. ‘는’과 같은 글자는 초성에 쓰인 ‘ㄴ’이나 종성에 쓰인 ‘ㄴ’의 크기가 동일하였었지만, 17세기에 와서 종성에 쓰인 ‘ㄴ’이 초성에 쓰인 ‘ㄴ’보다 더 크게 쓰이게 되었다. ‘ㄴ’이 ‘ㅏ, ㅓ’등과 같이 모음이 오른쪽에 올 때에 가로줄기의 끝이 위로 올라가게 된 것은 18세기 말부터 조금씩 나타나다가(1774년의 ≪삼역총해≫나 1777년의 ≪명의록언해≫ 등) 19세기 말에 와서는 일반화되었다(1882년의 ≪경석자지문≫ 등).
③ ㄷ ‘ㄷ’은 창제 당시에 오늘날의 글자 모양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즉 현대의 ‘ㄷ’에 비해 위의 가로획의 왼쪽 끝이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즉 위의 가로줄기의 길이가 아래의 가로줄기의 길이보다 길어서, 왼쪽으로 조금 튀어나온 형상이었다. 이러하던 것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였다. 1575년 광주에서 간행된 ≪광주천자문≫이나 1583년의 ≪석봉천자문≫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 ‘ㄷ’은 오늘날과 같은 모양을 갖게 되었다.
④ ㄹ ‘ㄹ’도 오늘날의 모습과 거의 동일하지만 약간의 변화를 겪었다. 창제 초기의 ‘ㄹ’은 위의 가로줄기나 아래의 가로줄기의 길이가 동일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초부터 아래 가로줄기의 길이가 조금 더 길어져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⑤ ㅁ ‘ㅁ’은 창제 당시의 자형과 동일하여서 변화를 겪지 않은 글자이다. 단지 초성에 쓰인 ‘ㅁ’과 종성에 쓰인 ‘ㅁ’의 크기에 차이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른 모든 자음의 변화와 동일하다.
⑥ ㅂ ‘ㅂ’은 창제 당시의 자형과 동일하여 변화가 없었던 글자이다.
⑦ ㅅ ‘ㅅ’은 원래 창제 당시에는 왼쪽의 삐침줄기와 오른쪽의 삐침줄기가 만나는 곳이 꼭대기여서 오늘날처럼 왼쪽의 삐침줄기의 조금 아래에서 오른쪽의 삐침줄기가 시작되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481년의 ≪두시언해≫이며 1496년에 간행된 ≪진언권공≫에서 분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일반화되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부터였다. ‘ㅅ’이 ‘ㅓ, ㅕ’ 등과 통합될 때에 오른쪽의 삐침줄기가 아래로 쳐져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62년에 경상도에서 간행된 ≪지장경언해≫부터이며 19세기 말에는 일반화되었다.
⑧ ㅇ ‘ㅇ’은, 창제 당시에는 완전한 동그라미였다. 이러한 모습이 ‘?’(옛이응)처럼 꼭지점을 달기 시작한 것은 1612년의 ≪연병지남≫에서부터이다. 그러나 이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 와서이다.
⑨ ㅈ ‘ㅈ’은, 창제 당시에는 3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가로줄기의 중간에서 왼쪽의 삐침줄기와 오른쪽의 삐침줄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가로줄기의 끝에서 왼쪽 삐침줄기가 시작되는 2획으로 변화한 것은 1612년에 간행된 ≪연병지남≫에서부터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19세기 말이다.
⑩ ㅊ ‘ㅊ’의 변화는 ‘ㅈ’과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단지 ‘ㅊ’의 꼭지점은 원래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 ‘ㅈ’자와 붙는 획이었는데, 이 꼭지점이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게 그어 ‘ㅈ’과 떨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1612년의 ≪연병지남≫부터이다. 이것이 일반화되어 나타나게 된 것은 19세기 중기 이후이다(1869년의 ≪규합총서≫).
⑪ ㅋ ‘ㅋ’은 ‘ㄱ’에 가로줄기를 수평으로 그은 모습으로 창제된 것이다. ‘ㅋ’이 ‘ㄱ’과 같이 ‘ㅏ, ㅓ’ 등의 모음이 올 때에 세로줄기가 왼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오게 된 것은 19세기 중기였다(1869년의 ≪규합총서≫). 19세기 말에 와서 이러한 모습이 일반화되었다. ‘ㅋ’이 ‘ㄱ’에 가로줄기를 수평으로 그은 것이었지만, 이것이 수평이 아니고 위로 약간 삐쳐 올라가게 된 모습은 17세기에 보이기 시작한다. 1682년의 ≪마경언해≫나 1698년의 ≪신전자초방언해≫ 등에 보이기 시작하여 1736년에 간행된 ≪여사서언해≫에서는 그 가로줄기의 획 끝이 ‘ㄱ’의 모서리에 닿도록 한 자형도 보인다.
⑫ ㅌ ‘ㅌ’은 원래 ‘ㄷ’의 가운데에 가로줄기를 그은 것이었다. 그러나 위의 가로줄기 ‘ㅡ’에 ‘ㄷ’을 아래에 붙여 쓴 것과 같은 모습은 1514년에 간행된 ≪속삼강행실도≫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17세기에도 간간이 보이다가(1682년의 ≪마경언해≫), 18세기에 와서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즉 1748년의 ≪동문유해≫를 비롯하여 많은 문헌에 두 가지 자형이 공존하다가, 19세기 말에 와서는 완전히 ‘ㅡ’에 ‘ㄷ’을 붙인 자형으로 변화하였다. 19세기 말에는 심지어 ‘ㄷ’의 위에 가로줄기인 ‘ㅡ’를 아래로 비스듬히 내리긋는 자형도 보인다. 1852년의 ≪태상감응편도설언해≫에 그 예가 보인다.
⑬ ㅍ ‘ㅍ’은 위와 아래의 가로줄기와 왼쪽과 오른쪽의 세로줄기가 모두 수평과 수직으로 되어 있던 것이다. 그래서 가로줄기와 세로줄기의 선은 서로 붙어 있었는데 이것이 떨어진 자형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1612년의 ≪연병지남≫부터이다. 가로줄기와 세로줄기가 붙은 자형과 떨어진 자형이 공존하다가 떨어진 자형이 우세하게 나타나게 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⑭ ㅎ ‘ㅎ’은 ‘ㆆ’에 꼭지점의 세로줄기가 서로 붙어 있던 것이다. 꼭지점과 ‘ㆆ’이 서로 떨어져 표기되기 시작한 것은 1612년에 간행된 ≪연병지남≫부터이다. 17세기에 구례에서 간행된 ≪권념요록≫ 등에 보이다가 18세기의 문헌에 자주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19세기 말에 일반화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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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음 : ㅝ ㅠ ㅐ ㅔ ㅖ ㅒ |
모음의 변화 중에서 특이한 것만을 몇 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ㅝ 워’는 원래 ‘ㅜ’와 ‘ㅓ’가 합하여 만들어진 모음자이다. 따라서 ‘ㅜ’의 위에 ‘ㅓ’가 합쳐져서 ‘ㅓ’의 가로줄기가 ‘ㅜ’의 가로줄기 위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의 우리나라 주화에 나타나는 ‘원’이 그 원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ㅓ’의 가로줄기가 ‘ㅜ’의 가로줄기 아래에 놓이는 형태로 바뀐 것은 16세기부터이다. 즉 1514년에 간행된 ≪속삼강행실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1690년의 ≪역어유해≫, 1721년의 ≪오륜전비언해≫, 1762년의 ≪지장경언해≫, 1765년의 ≪박통사신석언해≫ 등에 나타난다. 이것은 19세기 중기 이후에 일반화되었다.
② ㅠ ‘ㅠ’는 가로줄기에 세로줄기 두 개가 연결된 것이다. 따라서 창제 초기에 왼쪽과 오른쪽 세로줄기의 길이는 동일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왼쪽의 세로줄기가 오른쪽의 세로줄기에 비해 그 길이가 짧아지게 된 것은 16세기부터였다. 즉 1576년의 ≪신증유합≫에 처음 보이기 시작하여 17세기 이후에는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왼쪽의 세로줄기가 왼쪽으로 약간 삐치게 된 것은 1852년에 간행된 태상감응편도설언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19세기 말에는 일반화되었다.
③ ㅐ, ㅔ, ㅖ, ㅒ 이들 자모는 모두 두 개의 세로줄기를 가지고 있는 것들인데, 창제 당시에는 두 개의 세로줄기 길이가 동일하였다. 그러나 16세기 말부터 왼쪽의 세로줄기의 길이가 짧아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이러한 자형이 일반화되었다
1.3 한글 자형의 변화는 중앙보다는 지방에서 간행된 문헌을 통해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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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간략하게 한글 자형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논문은 단지 자료를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세한 기술은 하지 않았다. 위에서 나타난 결과로 볼 때에, 한글 자형의 변화는 주로 지방에서 간행된 문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관아에서 간행된 문헌들은 어느 정도 표준적인 자형을 보이고 있지만, 지방에서 간행된 문헌들은 변화를 보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러한 자형 변화의 원인에 대한 연구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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