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지나간다
하재봉
내 기억하거니와, 하늘과 땅을 용접시키던 불꽃의 꼬리
가 죽은 나뭇잎처럼 숲속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신분을 감추고 나무들의 바닷속으로 걸어가는 나. 구름
은 흩어지면서 숨어 있는 황금을 슬쩍 보여 준다. 저녁
보다 먼저 별의 등불을 걸어 두어야 하므로. 기차가
지나간다. 아주 우둔한 자들은 서쪽 지평선 밑에 태양
을 매장한 뒤 발전소를 찾아가는 것이었는데, 거꾸로 내
려가는 후송 열차인지 상처받은 신음 소리로 가득 차 있
어, 난 잠들 수 없다.
내 거의 확신을 가지고 물어보겠는데, 누구에게도 공격
받지 않고 임종을 맞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
는가? 그렇다면 남은 나의 생을 그대에게 무상으로 기증
하겠다. 기차가
지나간다. 힘을 공급하는 발전소 내부에도, 어두운 뒷
골목이 있고 버려진 쓰레기통이 있고 여위어 가는 달과
반비례해서 털의 윤기가 비로드천보다 빛나는 검은 도둑
고양이가 있다는 것, 왜 모르겠는가.
태양처럼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남아 있는 내 목숨,
사실은 생리가 중단된 그녀들과 난, 목례를 나누기 전부
터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모두 자궁을 갖고 싶
어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디에 감추었다고 생각하세요?
누구나 자기 몸 이외의 또 다른 무덤을 갖고 싶어한
다. 일생 동안 나는 태양에 집착했었다. 그것이 나의 자
궁이었고, 그것이 나의 발전소였으며 그것이 나의 암세포
였으므로. 벌써 날이 저물고, 그림자들이 길어지고, 벽들
이 두꺼워졌다. 아, 기차가
지나간다.
시집 『발전소』(민음사, 2007 재개정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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