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瀑布)
시.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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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詩
시. 김수영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尖端)의 노래만을 불러왔다
나는 정지(停止)의 美에 너무나 등한(等閑)하였다
나무여 영혼(靈魂)이여
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
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
성장(成長)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賢人)들이 하여온 일
정리(整理)는
전라(戰亂)에 시달린 이십세기시인(二十世紀詩人)들이 하여 놓은 일
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靈魂)은
그리고 교훈(敎訓)은 명령(命令)은
나는
아직도 명령(命令)의 과잉(過剩)을 용서할 수 없는 時代이지만
이 時代는 아직도 命令의 過剩을 요구하는 밤이다
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
지지한 노래를
더러운 노래를 생기(生氣)없는 노래를
아아 하나의 명령(命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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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시.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刹那)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시집 『巨大한 뿌리』(민음사.1984) 중에서
시음악출처;화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