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을 갈며/현대서예는 이런 것이다

현대서예와 전통서예

멍석- meongseog 2011. 9. 18. 09:54

 

 왜 현대서예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 동안 현대서예 작업을 해 오면서 생각하고

절실히 느꼈던 것들을 김태정교수님의 글이 있어 깊이

공감하며 현대서예의 당위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 2010. 멍석작 / 약속 (종이에 수묵, 담채)

 

 

 

@ 현대서예와 전통서예

                           < 김태정 대구예술대학교수/서예가 >

 

현대서예라는,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이 용어는 최근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서예하면 으레히 전통서예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현대서예'는 어쩌면 外道의 길을 걷고 있는 장르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을 받게 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그런 찬반논의의 시각을 떠나서, 다만 새로운 장르로서의 '현대서예'에 대해 이해하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풀러나가고자 한다.

대개의 서예작품은 서체와 필력 그리고 글의 내용으로 시작되며, 이러한 순서는 거의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은 없다. 또한 어쩌다 잘못 표기된 획 하나 점 하나에 일일이 시비가 따르고, 게다가 誤와 脫의 시비는 더욱 심하다. 서예의 본질은 線고 点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상이 대략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장르로서의 '현대서예' 표현의 자유에 입각한 문자조형 예술

이와 같은 의미로 현대서예의 본질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략 서예를 새롭게 추구하는 서예의 현시점의 표시라는 의미 부여와 함께, 전래되어온 전통서예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전통과 고전을 수용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입각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문자조형의 예술, 그리고 획의 뜻을 지닌 선과 점이 수용된 定形化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구성 위에 먹 이외에 색의 수용도 가능한 예술로 요약할 수 있다.

서예술의 본질은 문자를 이용하여(形式) 문장을 이루는 내용을 가지고(內容), 글씨의 기본법에 벗어나지 않게 써냄으로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전통서예는 전래대로 체질화 되어 있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표현의 제한이 너무 까다롭다. 예술은 원래 인간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기술로 탄생된다. 즉 사물이나 자연을 통해 느껴지는 느낌과 느낌을 손끝의 기술과 일치시켜 생각한 바의 모양새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씨로 예술품을 창작하는 이들은 정형화된 글자꼴의 형식에 반발하게 되고, 그 반발은 현대서예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즉 형식(문자)과 내용(글)에서 형식의 범주가 크게 변화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문자 숭앙의 정신 보다는 오히려 작가정신을 앞세운 새로운 문자조형예술인 현대서예가 대두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서예는 서예의 새로운 혁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힘은 생각에서 생기며, 그 원천은 예술적 심리라는 바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예술정신이 현대서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만든 것이다.

 

현대서예는 문자를 동원한다.

그 문자의 형태를 일그러뜨리고 흩어서 표현한다. 여기에서 작가의 세계관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규칙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불규칙하게 흐트러진 경우도 있다.

이렇듯 현대서예에서는 정상적인 문자의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전제로 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劃을 이루는 線質의 근본적인 조건까지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선질은 바탕이 서예적이어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으나 구성상의 조건은 제약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덧붙여지는 것이 색의 수용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전통서예에서는색 차체가 하나의 보조수단으로 쓰였지만. 현대 서예에서는 색 자체가 하나의 주표현수단이 된다.획과 색의 적절한 조화, 字形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작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드디어는 읽게 만드는 지극히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을 거치게 하므로써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그러한 예술이 현대서예이다.

 

또한 현대서예에서는 화면을 단순한 화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화면은 자신의 미감 표현이 머물고 있는 한 부분이라는 개념으로 대두된다. 전통서예에서의 구획을 지어놓고 글씨를 쓰며, 마지막 낙관 처리에까지 사전계획이 수립되어 있지만, 현대서예의 경우에는 화면이 종이가 되었건 골판지가 되었건 크기가 관계없고 칸 나눔이 무시된다. 전형화된 문자의 거부가 첫째 조건이듯이, 정해진 크기에 적당한 내용을 집어 넣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상황에 따라 구성하게 된다. 중요한 모티프는 크게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주위에서 받쳐주는 형태가 되기도 한다.글씨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림을 글씨의 뜻으로 수용해야현대서예는 회화와도 구별된다. 비록 글자의 맞춤이 헝클어져 의미를 알 수 없고, 색의 수용이 주 표현수단으로 쓰인다 하더라도 전체를 이루고 있는 線의 質은 서예적 범주에 수용되고 있어야 하며, 형태로 보아 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조형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모티프가 서예에서 출발하고 결론적인 도달점도 서예로의 방향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현대서예는 原論은 書畵同源論에 두고 글씨를 그림으로 표현하며, 그림을 글씨의 뜻으로 수용하는 동시표현방법을 추상적으로 연속 해석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비판하는 시각 또한 없지 않다. 그러나 현대서예를 수용하는 측에서는 고전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하고 있다. 즉, 막연한 붓놀림이 아닌 글씨의 기본적인 구조여건과 서예의 본질을 거친 연후에 파행적인 재구성을 해냄으로써 얻게 된 조형의식을 새로운 서예의 개척적인 집단으로 만든다는 골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서예는 서예를 업고 탄생한 또하나의 새로운 예술장르이다. 그리고 바로 글씨가 갖는 힘이며, 서예의 멋이며, 예술의 길인 것이다. 수천년의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예는 지금 우리 세대에서 식어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현대서예는 전통서예를 바탕으로 새로 태어난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이어야 한다

 

서예 ! 이대로는 안된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술혁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 이것이 시대적 요청이며, 사회 문화적 풍토가 그렇고 교육적 배경이 그러하다. 지금 신세대의 구조는 서예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고, 한문서예 대하기를 겁낸 지 오래다.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예술이 무슨 예술이겠는가?

예술적 기반 또한 마찬가지다. 동양의 한자문화권에서는 예술로 통하지만 서구의 미술계에는 명함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서예가 이 도탄에서 다시 한번 비상할 수 있는 길은 현대서예를 통한 변화와 예술혁신만이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현대서예 작가들의 정열적인 창작의욕과 뜻을 모아 하나의 운동으로 확산시키면서 좀더 현대지향적이고 체계적인 내실을 다져서 대중과도 가까워지고, 나아가서는 세계화단에 하나의 미술장르로 인정될 때까지 매진해야 하며 꼭 그날이 다가올 것을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