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시사가 어느덧 100년을 넘었다. 우리 시문학사 100년을 수놓았던 수많은 시인들 가운데 불멸의 명시名詩를 남긴 시인은 얼마나 될까. 작고시인·현역시인을 통틀어 ‘명시’의 반열에 드는 그 문학작품을 읽고 오늘의 우리 시인들은 어떤 영향과 자극을 받았을까. ‘명시’의 한 구절,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에 밑줄을 그은, 오늘의 우리 시인들에게 가슴 깊이 와닿은 시의 진정성과 고백을 기획 특집으로 싣는다. -편집자-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 한국을 대표하는 109명의 현역 시인들이 뽑은 ‘최고의 시구’ 우리나라 현역 시인들이 ‘최고의 시구’로 가장 많이 언급한 10명의 시인과 시
*읽는 법: 김수영 시를 추천한 현역 시인은 이재무, 김상미, 김중식 등 해서 14명. 시 제목은 대상이 된 김수영의 시.
●김수영 (14명) 「강가에서」 이재무 / 「거대한 뿌리」 김상미, 김중식 / 「거미」 권현형, 이선영 / 「구름의 파수병」 장석원 「그 방을 생각하며」 고영민 / 「꽃잎 2」 강은교 / 「눈」 정병근 / 「말」 김언 / 「비」 천양희, 장석주 「사랑의 변주곡」 나희덕 / 「헬리콥터」 강정 ●서정주 (9명) 「기인 여행가」 이근배 / 「동천冬天」 정진규 /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문정희 / 「부활」 이유경 「시론」 김남조 / 「자화상」 고두현, 이승하 / 「추천사」 허영자 / 「화사花蛇」 이수익 ●정지용 (7명) 「고향」 이가림 / 「말 1」 김종길 / 「백록담」 허만하, 홍신선 / 「유리창」 이탄 / 「장수산」 박제천 / 「홍역」 오탁번 ●이 상 (6명) 「거울」 길상호, 김이듬 / 「꽃나무」이수명 / 「아침」 이승훈, 정재학 / 「오감도 시제십오호詩第十五號」 김참 ●백 석 (6명)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안도현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최창균, 박주택 / 「모닥불」 이동순 「조당에서」 이병률 / 「흰 바람벽이 있어」 최영철 ●윤동주 (5명) 「길」 조말선 / 「별 헤는 밤」 함성호 / 「서시」 김정인, 김종철 / 「쉽게 씌어진 시」 심재휘 ●김종삼 (5명) 「라산스카」 황인숙 / 「묵화」 고진하 / 「미사에 참석한 이중섭씨」 노향림 / 「시인학교」 허연 / 「풍경」 송승환 ●김소월 (4명) 「가는 길」 김광규 / 「산유화」 장석남 / 「초혼」 김행숙, 유안진 ●한용운 (4명) 「알 수 없어요」 이하석, 장인수, 허형만 / 「당신을 보았습니다」 정끝별 ●이성복 (4명) 「그날」 이대흠 / 「아주 흐린 날의 기억」 문태준 / 「정든 유곽에서」 조현석 / 「모래내·1978년」 박형준
강은교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苦惱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時間을 위해서 ―― 김수영, 「꽃잎 2」에서
김수영, 이상한 모더니스트. 그에게 나는 참 많이 빚지고 있다. 그에게서 리듬이 왔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새벽 어떤 때, 리듬은 모든 것이니까, 형식이면서 내용이니까. 그의 시는 매끄럽지 못하나,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터억 걸리는’ 그런 리듬의 구절들이 있고, 그런 리듬들은 가끔 나를 시로 이끌곤 한다. 그 중의 하나.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꽃잎 (2)」 중에서) ‘구체 추상’의 실마리, ‘리얼 모더니즘’의 실마리, 결국 ‘상황 서정’의 실마리…… 그가 던져준 셈이다. 강 정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이었다 ―― 김수영, 「헬리콥터」에서
자유는 대개 비상과 통한다. 그러나 자유를 꿈꾸는 마음은 늘 비상에 대한 불가능성을 인지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영원불멸하는 모순이 아니라면 나는 자유에 대해 아무 할 말도 없다. 시적 자유와 삶의 자유를 등가로 봤던 김수영에게 자유란 늘 새롭게 돌이켜야 하는 양심의 나침반이자 그 처참한 결론이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시는 언제나 미완의 결론으로 남는다. 시인에게 정작 두려운 건 자유의 결핍이 아니라 자유의 완성이었다. 자유는 관념인 동시에 행동인 모종의 음험한 도덕률이다.
자유는 구속을 전제로 했을 때만 날아오를 수 있는 불구의 정신이다. 그 불구를 불구 자체로 인식했을 때 정신은 불굴의 것이 된다. 자유는 이렇듯 정신이 노정하는 궁극의 말장난과도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가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시인들은 ‘우매’하고 ‘어린’ 종족일 수밖에 없다. 자유라는 관념은 인간을 전혀 해방하지 않는다. 해방 다음의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 다음의 꿈이 정치적 자족과 기만뿐이듯, 시인에게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 일이라면 자유는 유보되어야 한다. 고두현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 서정주, 「자화상」에서
어디 ‘스물세 해 동안’뿐이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던 청춘 시절부터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캄캄한 절망조차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듯이…… 고 영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에서
은행원을 꿈꾸던 학생이 있었다. 어려운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자 마음먹고 스스로 상고에 입학해 책만 파던 학생이었다. 학교 밖은 시끄러웠다. 시국이 그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학생에게 운명이 바뀔 만한 일대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형이 유인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얼떨결에 받아든 유인물에는 군부독재니, 민주화니 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그 유인물 내용 중에 학생의 마음을 벼락처럼 휘어잡은 글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였다. 아무튼 그 다음날 스스로 문예반을 찾아갔던 학생은 이후부터 교과서 대신 시집과 『노동법 해설』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은행 근처에는 평생 가보지 못했다. 고영민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에서
그 방을 생각한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스무 살 문청시절, 우리는 문학을 한답시고 그 컴컴한 방에 모였다. 놀란 눈으로 미제침략사를 읽고 어느 날은 하얗게 최루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가두에 나갔다가 돌아와 그 방의 차가운 바닥에 눕곤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며칠을 낯선 방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당시 우리의 교과서는 '형상과 전형'이라는 루카치의 문예미학서였다. 그리고 시를 사랑하던 한 친구 녀석은 새벽, 그 방을 걸어 나와 취한 채 술을 사러 나갔다가 차에 공중으로 들려져 영영 그 방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의 우리들은 지금 아무도 없다. 모두 그 방안에서 전사했다. 혁명은 안되고 방만 바꿔버렸던 우리가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다. 고운기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에서
1978년 가을이었다. 군부독재의 단말마斷末魔가 가까이 들리던 무렵,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국어 시간이면, 작은 키에 단아한 모습, 눈빛이 맑은 선생님 한 분을 나는 기다렸다. 정희성. 그러나 그가 좀체 시국을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3학년의 한 선배가 어느 문학지에 실린 시를 보여주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였다. 처음 넉 줄을 읽었을 때 ‘물’과 ‘삽’과 ‘슬픔’이라는 세 단어가 주는 울림에 떨었던 기억이, 30년도 넘은 오늘까지 선연하다. 그보다 먼저 정희성은 “흐를 수 없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저문 강 언덕에 떠도는 혼이여”(「유전流轉」)라고 노래한 적이 있었다. 몇 년의 정치적 신난辛難을 겪으며, 정희성에게저문 강 흐르는 물은 어느새 자기화自己化되어 있었다. 고진하
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 전문
시인 김종삼의 「묵화墨畵」 전문이다. 언제 읽었는지 정확치 않지만, 이 시가 내게 벼락치듯 다가왔던 것 같지는 않다. 시를 읽고 나서 그냥 멍했던 것 같다. 하여간 이 시 때문에 나는 김종삼의 ‘시인학교’를 자주 드나들었다. 사물과 우주와의 교감을 이토록 짧은 시구로 표현하기가 어디 쉽던가. 진정한 교감은 신생의 통로이며, 자아 발견의 불꽃이다. 평화로운 풍경의 한 컷이지만, 삶의 비애와 슬픔과 적막이 부은 발잔등의 아픔처럼 스며 있다. 그 스밈은 치밀하여 시의 화자와 대상 사이에 ‘사이’가 없다. 그 사이 없음의 깊이와 넓이를 획득하는 일이 시의 지향이라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얼마나 먼가. 권현형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 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김수영, 「거미」에서
“너무 시퍼래서 어디 두어야 할지 모르는 저 스무살!”(김영태) 무렵에 만난 김수영의 문장은 강렬했다. 달디달았다. 빛과 어둠을 등에 짊어지고 다녔던 시절, 시지프스처럼 세계의 무게를 등짐지고 다녔던 시절, 갓 성인식을 치룬 내게 밖은 어쩐지 의뭉스러웠다. 의심스러웠다. 김수영의 설움이 나의 설움인 듯했다. 시퍼렇게 순결한 염결성을 무기로 지니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팔십년대 중후반. 왜 노랫말이 슬프냐고, 왜 행복하지 않느냐고 개인의 자의식을 검열받던 시기였다. 그때, 건전가요가 눈발 날리는 겨울 거리의 레코드 가게에서 불안하게 흘러나왔다. 하나, 어두울수록 환하고 싱그러운 문청 시절에 받아들인 설움은 외연일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흘러 풍경이었던 설움은 육체성을 내면성을 띠기 시작한다. 시의 원천으로, 소금을 뿌린 듯 아린 자의식으로 내부에 굵은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길상호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요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요 ―― 이상, 「거울」에서
악수를 모르는 세상에 서 있었다. 그 세상은 다름 아니라 내가 만든 세상이었다. 볼 수는 있지만 손끝 하나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언제나 나와 표정을 맞추면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걷고 있었다. 그 중 내가 실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의심하기 시작했다. 넌 왠지 허깨비 같아, 넌 너무 가득 차 보이니 실체가 아닐 거야,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을 의심해가다 보니 결국 손가락은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파악해내지 못하는 너도 아닐 거야. 이제는 만나는 얼굴마다 주먹질이 시작됐다. 거울 속에 갇힌 얼굴은 깨져버릴 테니까. 그렇게 깨가다 보면 결국 남는 하나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주먹의 핏물 든 상처마다 박혀든 거울조각이, 조각마다 깨져 있는 얼굴이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도 실체야! 나도 실체야! 머리는 그들의 괴성으로 날마다 시끄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머리 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꼭 그 손을 잡으려 했던 것일까? 가만히 손을 거둔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마음이 참 편하다. 거울을 뒤로하고 걷는다. 가끔 돌아볼 때에도 거울 속 너는 뒷모습을 보이지 않아 좋다. 그때서야 와장창 냉담하던 거울이 깨진다. 김광규
그립다 /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 그래도 / 다시 더 한 번 // ―― 김소월, 「가는 길」에서
1950년 정음사에서 나온 『작고시인선』(서정주 엮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한국 시선집이다. 책이 귀하던 50년대 초반기에 일금 오백 환을 주고 샀다.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 등 한국 신시의 선구자 열 분의 대표작품들이 실려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특별히 사사한 시인이 없으므로, 이 얄팍한 책이 문학수업의 첫 번째 스승이었다.
여기에 수록된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은 사춘기 청소년의 민감한 정서에 호소하는 바 크고, 3음보 율격도 친근한 매력을 풍겨 저절로 암송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내 문학교양의 기반으로 자리잡았다고 할까. 애틋한 그리움을 이처럼 짧은 3행 시연에 담은 예를 달리 본 적이 없다. 전통적 서정시의 전범은 오늘날 흔히 잊혀지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시구를 쓰지 못한 부끄러움을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 김광림
온길 눈이 덮여 갈길 눈이 막아 이대로 앉은 채 돌 되고 싶어라 ―― 박경수, 「눈」
해방 직후 향토(원산) 시인들이 펴낸 『응향』 시집 속에 수록된 것. 이 작자는 시인이기 전에 사학자였다. 당시의 암담한 현실과 사회상을 이렇게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집을 가장 악랄하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선 평자는 백인준이었다. 근자에 알았지만 그는 일제 말기 윤동주 시인과 친구였다고? 60년이 넘도록 청소년기에 읽은 이 시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뿐더러 ‘돌’에 관한 ‘바위’시까지 쓰게 만들었다.
“너에게 걸터앉으면/탐나는 것 부러운 게 없어져/벼슬자리 꽃자리 내갈겨 둔 채/듬뿍 술 한 잔 들이켜고/너마냥 잠들고 싶어져” 세상사 돌아가는 꼴이 돌 되고 싶은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지만 간혹 돌마냥 잠들고 싶은 심정임을 어쩌랴. 김규동
3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에서
경성고보 시절 영어시간에 기림 선생이 누차 당부하던 말이 생각난다. 담배 피우지 말아라. 책을 선택해서 읽어라. 새로운 문명에 접하는 생활태도를 중히 여겨라. 지금은 수학 영어 물리 화학 지리 기하, 이것을 공부 잘하고 글쓰는 일 같은 것은 기초학문을 마친 다음에 해도 충분하다. 대성하는 길이 그것이다. 이런 교훈만 하고 우리들이 만든 ‘동인지’ 따위는 봐주려 하지 않는 선생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빨리 시인이 되고 싶은데, 하지만 시인 스승은 그것을 절대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위 시구는 센티멘털·로맨티시즘의 시 풍토에서 지성을 건져올린 시작품의 한 보기다. 이미지 예술로서의 시가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 즉물적 객관적 회화적 구성적인 요소가 그것들이다. 이 시를 읽을 때 우리는 이 시가 나라를 잃은 암울한 시기에 씌어진 작품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규성
이슬은 하늘에서 내려온 맨발 풀잎은 영혼의 깃털 ―― 정진규, 「화和」에서
내 침실 겸 서재에는 한 편의 시가 수채화처럼 걸려 있다. 예의 ‘활달한 유연柔然’이 특징인 경산체絅山體가 빚어놓은 우주시 속의 액자시이다. 그 도입부가 위 구절인데 혼의 상징적 거처인 하늘을 육감적으로, 몸의 텃밭인 대지를 정령적精靈的으로 탈바꿈한 전경화가 행여 낯설지 않다. 화급하게 “맨발”로 달려온 “이슬”을 “깃털”처럼 부드러운 설렘으로 맞는 “풀”의 조응은 원초적이면서도 그지없이 순결한 상생의 축제로, 그 정경유착情景癒着의 절경絶景이 볼수록 황홀하고 환하다.
산문시조차도 여느 정형시보다 더 맛깔스런 리듬을 자랑하는 정진규 시인의 시는 한 마디 오해도 허락지 않을 듯 수고롭지 않게 읽히면서도, 구구절절이 감미롭고 유장한 울림으로 청자聽者의 몸 속 깊숙이 녹아 흐르는 게 압권인데 위의 천지공사天地工事는 그 중에서도 백미이다. 각별한 인연일수록 ‘객관적 시 읽기’가 예의이겠지만 그런 상식과 기우쯤 무색하게 압도하는 두 행의 벅찬 은유가 내 일상의 삭막한 직유와 동거한 지도 꽤 날수가 찬 셈이다. 김남조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 서정주, 「시론詩論」에서
“바다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명시, 명구절은 허다하련만 그 중에서 위의 6행시 한 편을 가려 뽑았다. 앞의 3행은 전치사인 셈이고 뒷부분 3행에 있어서도 끝줄이 나의 일상에 거의 유착되어 온다. 시인이 한 편의 새 작품을 마무리짓고 나면 흔히 존재의 공동空洞현상에 빠져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 까닭은 일상의 수심이 얕았거나 비축해 둔 곡물창고가 가난했기 때문인 듯하다. . 나는 내 시정신의 빈혈현상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자주 있어오는 이 증상을 우려하고 겁먹어왔다. 한 편의 시를 얻었을 때 더 좋은 다음 시가 물속 바위에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런 풍요로움이야말로 내 평생의 황홀하고 과분한 희구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시인에게 있어서도 시의 샘물이 다시금 그 전량으로 남아 부풀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바랄 것이랴. 김병호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 송기원, 「시」에서
시와 삶이 하나였던 시절, 오히려 생활이 시를 빛내 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재수 끝에 들어온 대학교에서 난생 처음 입어본 과티. 그 가슴팍에 찍혀, 시보다 먼저 옷으로 입었던 시구.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스무 살의 우리들은 시를 입고 명동과 남대문시장, 평택역을 뛰어다녔다. 가슴팍에 찍힌 화인처럼, 남몰래 어루만지거나 조용히 읊조리기만 하여도 척추가 꼿꼿해지곤 했다. 양심만으로 양심을 지킬 수 없었고, 용기만으로 승리할 수 없었던 시절의 마지막 세대였다. 심판의 날 소돔을 탈출할 때, 유황 불벼락 속에 죽어가는 이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뒤돌아본 채 죽어, 빛나는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시인의 삶이란 그러해야 한다고 아직 믿는다. 그리고 여전히 한 편의 시가 천만인의 가슴을 격동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김상미
나도 감히 상상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 김수영, 「거대한 뿌리」에서
여고 시절, 나는 차비를 아껴 민음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을 한 권씩 사 모으는 게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그때 산 김수영의 시집 『거대한 뿌리』를 읽었을 때, 나는 시라는 운명이 기지개를 켜며 힘차게 내게로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내 길은 문학에 있으며, 언젠가는 누구의 의지도 아닌 내 의지로 그 길을 가게 되리라는 걸. 그 이후부턴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나는 내 안에서 자라나는 ‘문학’으로 인해 쉽게 기가 꺾이지 않았다. 남들이 볼 땐, 허허벌판 한복판에 혼자 꽃피우며 서 있는 이상의 「꽃나무」처럼 이상해 보였겠지만. 그 모든 세상일은 ‘나도 감히 상상想像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능히 견딜 만했으며, 스스로 힘이 되어 나를 지켜주었다. 김선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중학교 1학년 시절, 시골집 형의 골방에는 달랑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내 고향 강진 출신인 김영랑의 시집이었다. 달리 읽을 책이 없었거니와 당시 짝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던 나는 수십 번이나 그 시집을 읽어서 송두리째 외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김영랑 시인과 그의 시집은 맨 처음 나를 시의 길로 인도한 운명적인 스승이요 텍스트가 된 셈이다.
특히 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 나오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는 역설의 시구는 지금도 나를 경탄과 전율에 떨게 한다. 슬픔의 빛깔이 어쩌면 이토록 찬란할 수 있단 말인가. 애이불비의 촉기를 머금고 있는 이 시구로 인해 영랑의 시가 저급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았듯이, 나의 시도 어두운 과거사를 잘 다스려 승화된 시세계를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구는 아직도 내겐 불상의 광배光背처럼 환하게 남아 있다. 김 언
이 무언의 말/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우연의 빛이요 우연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이 만능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 김수영, 「말」에서
여름밤이었나 겨울밤이었나. 흥건히 술에 취해 소설 쓰는 형의 집에 가서 보았던 말. 한동안 얼이 빠져서 보았던 말. 나무액자에 고이 걸려 있던 누구의 것도 아닌 그 말. 김수영의 말. 말에 대한 말. 말이 아닌 모든 것에 빚진 말. 빛이면서 우연이고 우연이면서 죽음을 꿰뚫는 말. 만능의 말이면서도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시인의 말이면서 범인의 말. 평범한 말이면서 죄를 짓는 말. 모두를 겨냥하면서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 말. 저 혼자서 맴돌고 저 혼자서 죽음을 목격하는 말.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버려도 탄생하는 말. 아무도 목격하지 않는 밤의 말. 이 무언의 말이자 유언의 말. 시체의 말이자 정확히 생명의 말. 감각의 말이자 침묵의 말. 김언희
벗겨내주소서아버지 나를아버지 콘돔처럼아버지 아버지의좆대가리에서아버지!” ―― 김언희, 「벗겨내주소서」에서
한국현대시사 100년이거나 말거나, 가장 빛나는 표현이거나 말거나, 최근에 나로 하여금 ‘절정의 순간을 체험케’ 한 것은 위의 구절이었다. 십수 년 전의 글을 뜻밖에, 그것도 토막으로 지면에서 대면한 순간, 내장 속으로부터 차디찬 전율이 번져나왔다. 감동이 아니라 전율이, 살갗을 기는 지네 같은 전율이. 쓸 때는 무엇을 왜 쓰는지 모르고 썼던, 써 놓고서도 여직 깨닫지 못했던, 이 구절은 이상의 “義足을담은軍用長靴가내꿈의白紙를더럽혀놓았다”의 대구對句였으며, 김수영의 “한 가지를 안 속이려고 모든 것을 속였다.”의 대구였다. 나의 대구였으며, 나의 대꾸였던 것이다. 나의 온 몸과 마음, 온 생활을 건! 김왕노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 기형도, 「밤눈」에서
시인의 눈이 미모사보다 더 예민하고 말미잘보다 더 감각적인 촉수를 가졌음을 그리하여 내가 그보다 더한 감각체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내통해야 함을 일러 준다. 시인은 누구나 쉽게 간과해가는 하찮은 것에서부터 미세한 것을 영혼의 세포 하나하나로 읽어간다. 뒷전에 있거나 잊혀지거나 소외된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그러므로 시인의 위대함은 완성된다. 나는 언제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을 읽어내고 노래할 수 있나. 시인이 예민한 감각의 영혼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상처를 쉽게 입고 존재가 불안하다. 하지만 예민한 감각을 가졌기에 세상의 모든 어둠을 감지하며 어둠에 대해 고발해 온다. 그러므로 시인은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이 입증된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에서…… 김이듬
거울속의나는왼손잽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오 ―― 이상, 「거울」에서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중얼거리며 버티던 때였다. 나는 왼손잡이, 안경잡이에다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병약한 소녀였다. ‘거울 속의 나는 정상/왼손잡이 아냐, 풀 같은 머리칼/거울 속에서 나는 두 개의 눈동자’. 나름 신경 쓴 몇 문장 때문에 국어선생은 화를 내셨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베끼고 난리야!’ 출석부로 머리를 탕탕 치셨다. 증거물로 내민 이상의 시집이야말로 난생 처음 보았다고 아무리 해명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나는 이름도 시도 이상한 이상이 나보다 빨리 태어나서 내가 할 말을 선수친 것에 분개했지만,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를 처음으로 당혹케 안절부절 못하게 한 시였으니까.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최고’는 없다. 그런 게 있다면 오라! 네 천둥벼락을 내 심장에 꽂아서 제발 나를 잠잠하게 해줘.) 김정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에서
단발머리 시절의 어느 여름밤, 툇마루에 누워 본 하늘의 별빛이 청명하게 가슴속을 파고든다. 바람에 스치는 별, 나의 별, 나의 존재, 불현듯,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별빛 쏟아지듯 내 몸을 덮친다. 모공마다 솜털 일제히 일어선다. ‘흔들리는 바람은 씨앗을 퍼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이후,「서시」의 날카로운 반성의 언어는 불안한 성취마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낱낱의 길목에서 함께 서성이던 그 불안은 어느 극점에서 시를 엿보게 하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만화경을 흔들어 섞어 놓은 듯 미로를 헤매는 나의 시 쓰기. 지금도 나는 처음 감격 그대로 「서시」를 통해 끊임없이 채널링하고 있다. 김종길
이 말은 누가 난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 정지용, 「말 1」에서
지용의 「말 1」은 동시풍의 작품인데 앞에서 인용한 두 행으로 끝난다. 나는 이 두 행을 지용시 가운데서 최고의 순간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 현대시를 통틀어서도 시적으로는 최고의 시구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경우 그 이유를 이야기하기란 지난하다. 엘리엇이 젊었을 때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좋은 시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올 여름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소장 합스부르크 왕가 수집 작품들을 둘러보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책을 읽는 자기의 아들을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이었을 때도 그러했다. 그 화폭에 신운神韻이 감돌듯이 지용의 그 두 행에도 신운이 감돈다고나 할까. 김종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에서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에 만난 시입니다. 스무여덟 살에 옥사한 그는, 시인으로서 시를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다만 유고 시집이 나오고 난 후 우리는 그를 시인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윤동주의 시는 그래서 더욱 정갈하고 곡진하게 내 마음 속에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 줄의 표현에 괴로워했던 철없던 시절, 나도 윤동주의 잎새처럼 괴로워했습니다 ‘한 점 부끄럼’ 없었던 까까머리의 문청 시절이 바로 나의 서시입니다. 김종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에서
캄캄하고 외로웠던 문청 시절, 부산은 어두웠다. 나는 혼자서 그 어두운 유적지에 남아 있었다. 내 호주머니 속엔 언제나 청산가리, 죽음도 무섭지 않았다. 그때 내게 투사되었던 한 줄기 불빛, 시詩였다. 칼릴 지브란은 속삭였다.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아 주지 않으리라.” 그의 음성은 나를 시에 눈뜨게 했다. 칼릴 지브란과 함께 김춘수의 시 「꽃」이 왔다. 「꽃」은 나를 적대적이었던 세상 속으로 부드럽게 연착륙시켰다. ‘세상 사는 법’과 ‘사랑하는 법’까지. 나는 당당하게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까지 부르게 되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그 이름을 불러보고 각인시켜 보라. 어쨌든 “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중식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 김수영, 「거대한 뿌리」에서
한갓 변명에 불과하겠지만, 1980년대 중반, 나의 습작시절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브레히트)였다. 짐승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믿고 있었다. 혼의 절창絶唱들인 소월과 미당은 너무 아름다웠으므로 욕이 나왔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아도르노)는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나의 두개골을 반쪽으로 쪼갠 섬광 같은 시구가 어찌 한둘이겠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는 지금까지도 내 삶의 화두다. 그 가운데 “미국놈 좆대강”을 들이민 이유는 내 시의 화두이기 때문이다.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지는 글, 남들이 지금껏 하지 못한 말이 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나의 시는 모두 그 구절의 표절이자 변주이다. 김 참
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 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 ―― 이상, 「오감도 시제15호烏瞰圖 詩第十五號」에서
고등학교 때 아주 두꺼운 시선집에서 이상의 시를 처음 읽었다. 그의 시는 시선집에 수록된 다른 시인들의 시와는 달리 무척이나 강렬했다. 지금까지 읽어본 수많은 국내외의 시 가운데 인상적인 작품들은 적지 않지만, 거울을 소재로 이상이 쓴 시만큼 독특한 느낌을 주는 시는 그리 많지 않다.
거울을 소재로 쓴 시도 그렇지만 나는 이상의 다른 시들도 대부분 꿈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잘 몰랐던 습작시절, 나는 간밤에 꾼 꿈을 노트에 옮겨두곤 했다. 그때 내가 옮겨둔 내 꿈들은 내 시의 일부가 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한갓 백일몽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꾼 꿈은 내 삶의 절반이다. 내가 꾼 꿈과 내가 쓴 시는 내 삶을 거꾸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꿈꾸는 사람이니, 그가 꾼 꿈들은 시가 아닌가? 김행숙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 「초혼」에서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소월의 이 구절이 아직까지도 내게 그 진동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 그것은 이름이랄 수도 없는 울림이자 파동 자체로 변용되어 내게 무한한 가능성의 지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시쓰기는 사라지는 중이면서 동시에 구성되는 과정인 그러한 상태를 체현하는 특이한 신체가 되는 일이다. 이제 내게 소월의 「초혼」은 절대적인 이별 앞에서 슬픔과 격정의 최대치를 실연하는 연인의 노래가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 그 너무 넓은 공간 속에서 비껴가는 것, 희박해지는 것, 조밀해지는 것, 그러한 이질적인 흐름과 리듬을 부르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하늘과 땅 사이, 그 과도한 넓이를 몸으로 품은 이상한 내부에서 그 내부를 찢으면서 폭발하는 기쁨을 나는 부르고 싶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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