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思開/書畵理論

[스크랩] 현대서예이론

멍석- meongseog 2007. 12. 21. 16:27
 1. 들어가는 말
 
  포근하고 따스한 봄바람, 노랗게 손짓하는 유채 꽃, 앙증맞은 파란 새싹, 매미 소리로 짙푸른 녹음, 풍성한 결실에 만상홍엽(萬象紅葉) 예쁜 단풍,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이러한 계절에 파묻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너무나 정겹다. 
  이러한 정겨운 감정을 더욱 키우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 끼리야 혹여 눈빛만으로도 몸짓만으로도 서로의 아름다운 마음이 통하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 좋은 느낌을 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상의 모습이나 느낌 및 욕망의 표현 및 전달 방법으로서 말로써 하는 것을 音聲言語라 하고, 글로써 표현하는 것을 書面言語라 하며, 평면이나 입체적인 조형으로서 표현하는 것을 미술 즉 造形言語라고 한다. 곧 말이나 글이 思想과 感情을 전달하는 적절한 수단으로서 언어로서 발달한 것처럼 미술도 思想과 感情을 전달하려는 방법으로서 어떠한 조형을 통해서 표출 발달된 언어이다.
 
  이 중 특히 서예는 독특한 체계를 지니고 있으니 서면언어인 문자와 조형언어인 미술이 합치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욱 높은 경지를 추구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약 2 천 년 전 경에 이미 높은 학식과 사상 및 인품을 갖춘 최고엘리트들이 서예의 주 창출자요 수요자였으니 높은 경지를 이루게 되어 서예는 東洋藝術의 씨앗이요 꽃으로 발달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세상의 가치는 변화하는 것이니 서예도 옛날의 內容과 形式으로 현대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사회 환경이 너무나 변화하였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달로 서면언어의 기능은 컴퓨터 관련부분에서 훨씬 앞서가고 있으며 일상의 생활도 漢文 중심에서 한글 중심으로 엘리트 중심에서 庶民 중심으로 변화하는 것이 뚜렷하다.

  현대를 사는,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서예는 과연 어떠한 內容과 形式을 추구해야 할까? (참조, 전 명 옥/한국서예협회이사장 )
 
 
 2) 書藝란 무엇인가
 
  고대 문헌을 살펴보면 서란 손으로 붓을 잡고 있는 모습을 묘사함을 알 수 있다. 書자를 분리하여 보면 손으로 붓을 잡는 것과 물체에 채색을 묻히거나 바르는 것이었다.
 이렇듯 書란 붓으로 대나무나 비단, 천, 종이, 비석 등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거나 彩色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좀 더 확대되어 글씨 쓰는 일, 글씨 그 자체, 책 등을 모두 서라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書는 과연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
 
  첫째, 書는 實用性의 藝術이다.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방법으로 書가 활용되었다. 처음에는 그림으로, 그리고 상형문자로, 또한 의미가 담긴 기호로, 그리고 문자형태가 구체화하면서 의사소통의 중요한 형태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작은 사회와 국가가 통일되면서 공통, 표준화된 의사, 情報傳達의 형태가 된 것이다. 
 
 둘째, 書는 마음속의 그림이다. 
  단순한 의사소통에서 그치지 않고 그 글자속에 내포된 또한 쓰는 사람의 마음속의 내면이 글씨에 묻어나는 것이다.
 
  셋째, 書는 無彩色의 藝術이다.
 
  넷째, 書는 修養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다섯째, 서는 이러한 書는 實用性, 內面世界의 表現, 無彩色의 藝術, 修養 등을 통합하여 하나의 치료적, 수양적 의미를 갖는 行爲인 동시에 훌륭한 작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書자를 현대적 의미로 해석해보면, 손으로, 붓을 잡고, 이를 통해 마음을 表現하는 行爲가 되는 것이다.
 
   書를 익히고 사용하는 것을 우리 나라에서는 書藝라 하고 일본에서는 書道, 중국에서는 書法이라고 한다. 또한 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학문적인 부분을 서학이라고 부른다. 어떠한 명칭이 가장 적절한지 그 무게를 따지기는 어려우나 藝, 道, 法, 學으로서의 의미를 넘나들며 그 범주가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書法의 법은 결속, 규칙, 방법을 의미한다. 書道의 도는 인간이 준수해야 할 도덕이나, 덕목, 더 나아가서는 자연의 이치를 의미한다. 書藝의 예는 藝術, 技術 등의 뜻을 갖는다. 書學의 학은 학문적인 것을의미한다.
 
예술이란 측면에서 보면 書藝가 맞는 것 같고, 법도에 의미를 두면 書法이 적절한 것 같고, 인격도야의 측면에서 보면 書道가 적절하고, 실용성에 주안점을 두어 학문적인 것을 생각하면 書學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것 같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를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바로 書라고 하겠다.

 
 3) 書藝의 現代性이 필요한 까닭
 
  書藝란 일반적으로 문자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心性을 表現하는 線의 예술로써 抽象的이면서도 形而上學的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美學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21세기가 문화의 정신 가치가 더욱 필요로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東洋藝術의 기저라 할 수 있는 書藝의 線과 劃에서 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書藝의 특징으로는 먼저 글자를 쓰는 것으로써 書 藝術이 성립된다. 點과 線의 構成과 比例, 均衡에 따라 空間美가 이루어지며, 이것은 筆順, 즉 쓰는 순서로써 시간성이 도입된다. 이것은 자연의 具體的 사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抽象的인 것을 소재로 한다.

  筆順에 의한 시간성의 도입은 同時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문자의 각 구성요소는 연속된 시간의 흐름선상에서 서로 有機的인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때  鑑賞者 또한 이러한 문자 체계를 가진 자이며, 이 때문에 쓴 사람의 시간적 진행과 같은 조건에서 그 構成要素들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각각의 서로 다른 요소들은 시간의 흐름선상의 변화로 인식되어 리듬이나 박자감을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音樂적인 부분의 美感은 여타 다른 平面藝術에선 볼 수 없는 書藝만의 독특한 분야라 할 수 있겠다. 여러 技法의 强弱法 및 기본적인 요소는 거의 갖춘 平面 藝術이면서도 時間藝術이기도 한 특이한 분야이다.
 
  言語는 마음의 소리이며 書는 마음의 그림이라는 말이 있다. 글씨는 곧 그 당시 자신의 마음, 자기의 성품을 그대로 나타낸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면에서 書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면 일단 "書란 文字를 붓으로 쓰는 行爲"라고 할수 있다. 
  또한 서는 문자로서의 意味性을 지닐 뿐 아니라 동시에 조형의 대상으로서 예술성을 띤다. 즉 서는 "문자를 대상으로 한 조형적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書藝는 작가의 예술적 의지가 보다 중요하게 강조된다. 여타 미술보다도 한층 순수하게 작가의 내면성과 주체적인 생명감정을 강조하게 된다. 여기에 작가의 마음과 연결된 기(氣)로 運筆의 속도와 線質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문기(文氣)와 문심(文心)은 胸中의 고도의 정신세계가 작용하여 표현한다면 錦上添花인 것이다.
  그리고 사혁의 6법 중 첫째 조건인 ‘氣韻生動’도 작가의 심물 일기(心物一氣)에 의한 주체적 筆墨작용의 결과물을 이름이다.
 
 "글씨를 쓰는 데 있어 꼭 진이나 당의 옛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들을 하나 거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글씨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생활이고 보면 옛 것을 따른다 해서 반드시 극치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옛 것을 가짜로 흉내 내기보다는 진짜인 현대의 글씨를 쓰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다만 나의 마음에 즐겁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자하 신위)
 
  그럼 書藝의 네 가지 특성이란 무엇인가? 靈的 무한성, 精神的 찰나성, 肉的 일회성, 感覺的 다양성이다. 다시 시·공간으로 나누면 시간 개념으로서 선(線)의 무한성과 찰나성, 空間 양식으로서 획(劃)의 일회성과 다양성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點과 線 그리고 획의 긁고 가늘기, 길고 짧기, 붓으로 누르는 압력의 강약, 가볍고 무거움, 먹의 농담, 문자간의 비례와 균형이 서로 어우러져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진다.
 
  동양의 예술이 서양예술과 다른 점은 회화적이라기보다는 線적이며 사실적이라기보다는 抽象的이라는 점이다.
  특히 書라는 것은 구체적인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문자를 붓의 선적인 운용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다. 선의 예술적 의미는 문자의 조형성과 함께 붓의 온갖 작용으로 생겨난다. 붓의 움직임을 통해 한 점, 한 획이나 문자와 문자 사이의 生命적인 리듬의 긴장이 느껴지고, 그래서 점과 획, 문자와 문자 사이의 균형과 대비, 조화의 미가 어루러져 白과 黑의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서의 예술성과 서법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일반인들에게는 가까이할 수 없는 어려운 대상인 書藝의 위치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4) 現代 書藝의 接近
 
  현대의 서예는 시대 현상에 의해 더욱 강하게 이 의문을 제기 받고 있다. 실로 가공할 양의 情報를 쏟아내고, 무한 속도로 처리하는 디지털 시대가 지극히 아날로그 형식의 예술인 書藝를 어떤 형태로 존재할 것인지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이 다그침은 예술이 지니는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의 임무를 올바르게 수행하라는 채찍이자 존재가치에 대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傳統藝術로서의 덕목과 現代藝術로서의 임무, 未來藝術로서의 시대성을 지닐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참조, 서예의 이해; 조 수현)
 
  또한 그 시대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것도 書藝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해오고 이는 많은 書藝 관련자료 중에는 後世에 전하기 위하여 어떤 의도하에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당시의 단순한 기록으로서 일시적 필요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이것이 시대가 바뀌게 됨에 따라 그 가치가 커지게 된 것이다. 당시의 시대정신 즉, 시대사조, 시대의 감정 등이 작품중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시대정신에 의해 시대 양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라면 같은 시대의 예술가는 같은 表現 樣式을 취하는 共通性이 있게 된다.

  현대서예는 튼튼한 전통서예가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나온다. 전통서예에 대한 기초적 훈련이나 동양적 미의식에 대한 깊은 천착없이 서예의 본질을 망각한 체 현대라는 이름으로 마구 휘감겨 대거나 오버액션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서구적 회화의 영역으로 넘어가 스스로 書藝家이기를 포기하는 경우이다. 主體的으로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래양식의 흡수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현대서예는 文字를 동원한다. 그 문자의 형태를 일그러뜨리고 흩어서 표현한다.
  그리고 덧붙여지는 것이 色의 수용이다. 서양의 석기시대 壁畵를 봐도 문자인지 그림인지 구별이 안가는 記號를 발견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구별이 필요 없었고, 문자가 곧 그림이고 그림이 곧 읽게 만드는 지극히 立體的이고 複合的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오늘의 한국서화는 조형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筆墨精神의 재해석 없이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양식과 변형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동·북의 필묵정신에 대한 문제가 더 시급하고 핵심적이기까지 한 요체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現代 書藝를 위해 한길을 걷고 있는 포헌 황석봉 선생님의 現代 書藝의 提言을 첨부해 본다.
 
 
 @ 書藝의 現代化가 時急하다
 
  "현대서예는 새로운 장르입니다. 전통서예는 古典의 답습에만 급급하고 현대적인 美感과 새로운 변화는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데서 한계를 가집니다." 즉 수천년 동안 한 글자, 한 획, 한 점에 대한 반복으로 거의 일관된 형식에 얽매여 온 전통서예는 관념적 경지의 예술세계의 본질을 벗어나, 유교적 規律에 기인하는 법도와 격조만을 생명처럼 지켜왔다.

   현대서예라는,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이 용어는 최근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書藝하면 으레히 전통서예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現代書藝'는 어쩌면 外道의 길을 걷고 있는 장르가 아닌가 하는 우려의 視線을 받게 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그런 贊反논의의 시각을 떠나서, 다만 새로운 장르로서의 '現代書藝'에 대해 이해하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풀러나가고자 한다.

  대개의 서예작품은 書體와 筆力 그리고 글의 內容으로 시작되며, 이러한 순서는 거의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은 없다. 또한 어쩌다 잘못 표기된 획 하나 점 하나에 일일이 시비가 따르고, 게다가 誤와 脫의 시비는 더욱 심하다. 서예의 本質은 線고 点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구속됨이 없이 여러 가지 변화를 통하여 문자나 형상을 抽出·發展·表現한다. 즉 이는 춤의 動勢의 아름다움을 정련·추출하는 것과도 같다. 정화된 추상적 선(線)과 다양한 격조를 만들어 현실세계의 생동하는 느낌을 주고, 이것은 생명 發出의 암시며, 유동적이며 신축성이 있는 자유미다.
 
  단순히 집약된 사물의 描寫에만 그치지 않고 너무나도 유연하게 서정(抒情)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는 자태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이상이 대략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서예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장르로서의 '現代書藝' 표현의 자유에 입각한 文字造形 藝術
 
  이와 같은 의미로 현대서예의 본질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략 書藝를 새롭게 추구하는 서예의 현시점의 표시라는 의미 부여와 함께, 전래되어온 전통서예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傳統과 古典을 수용하면서 표현의 자유에 입각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하는 문자조형의 예술, 그리고 劃의 뜻을 지닌 線과 點이 수용된 定形化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구성 위에 먹 이외에 色의 수용도 가능한 예술로 요약할 수 있다.
 
  書 藝術의 본질은 문자를 이용하여(形式) 문장을 이루는 내용을 가지고(內容), 글씨의 기본법에 벗어나지 않게 써냄으로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전통서예는 전래대로 體質化되어 있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표현의 제한이 너무 까다롭다. 예술은 원래 인간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기술로 탄생된다. 즉 사물이나 자연을 통해 느껴지는 느낌과 느낌을 손끝의 기술과 일치시켜 생각한 바의 모양새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씨로 예술품을 창작하는 이들은 정형화된 글자꼴의 형식에 반발하게 되고, 그 반발은 현대서예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즉 形式(문자)과 內容(글)에서 형식의 범주가 크게 변화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문자 숭앙의 정신보다는 오히려 작가정신을 앞세운 새로운 문자조형예술인 現代書藝가 대두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現代書藝는 서예의 새로운 혁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힘은 생각에서 생기며, 그 원천은 예술적 심리라는 바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예술정신이 現代書藝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만든 것이다. (참조, 황석봉 /현대 서예의 제언)
 
 
  現代書藝의 실제에 들어가자.
 
  現代書藝는 문자를 동원한다. 그 문자의 형태를 일그러뜨리고 흩어서 표현한다. 여기에서 作家의 世界觀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규칙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불규칙하게 흐트러진 경우도 있다.
  이렇듯 現代書藝에서는 정상적인 문자의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전제로 되어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劃을 이루는 線質의 근본적인 조건까지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線質은 바탕이 서예적이어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으나 구성상의 조건은 제약을 두지 않는다.
 
  상징작용의 難點은 정확히 무엇이 상징되고 있는가를 발견하는데 있는 것이다. 상징을 명확히 파악했더라도 배후에 있는 것을 분석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따라서 상징작용의 목적은 상징한 것의 중요성을 高揚시키는 것이다. 문자 자체가 하나의 상징작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새로움은 언제나 긴박한 현실 속에 內在되어 있다. 긴박하다함은 역시 정신과 관련되어진다. 정신적 경험에서의 형식이란 목전의 계기를 초월해서 타계기들과 이어주는 작용을 한다. 즉 關係性·超越性과 연관된다. 그렇기에 작가들의 작업들에서는 소재나 양식등이 속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 실험(an objective test)과 진보의 방법(amethod of progress)이 보인다는 말이다.
 
  進步의 비밀이란 현상적 형태의 抽象的 圖式에 관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실리적 관심에 응용되기 이전에 이미 자신의 自足的 관심을 축적시켜온 도덕적 결과물인 것이다.
 
  아름다운 향유에 의한 심미적 만족을 향한 욕구는 물리적 질서(物에 향한)에 반대하는 것처럼, 물리적 질서의 외부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욕구란 물리적 느낌의 "개념적 평가"와 관련된다. 단순히 맹목적인 創作的 美의 욕구는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한 양식적 질서(上向 : 개체적 불멸성-objective immortality)에 대한 약간의 지식에 다름 아니다.

  자고로 創作의 思惟는 맹목적이 되기보다는 체계를 창조하고 또 그것을 끊임없이 초월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藝術世界는 참으로 孤獨하고 참되고 성실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참조, 이종균전; 황의필 평론)
 
 그리고 덧붙여지는 것이 色의 수용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전통서예에서는 色 자체가 하나의 보조수단으로 쓰였지만, 現代書藝에서는 色 자체가 主 表現手段으로 등장하게 된다.
 
  劃과 色의 적절한 調和, 字形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작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드디어는 읽게 만드는 지극히 立體的이고 複合的인 과정을 거치게 하므로써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 그러한 예술이 現代書藝이다.
 
  또한 現代書藝에서는 화면을 단순한 화면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화면은 자신의 美感 表現이 머물고 있는 한 부분이라는 개념으로 대두된다.
  전통서예에서의 구획을 지어놓고 글씨를 쓰며, 마지막 落款 처리에까지 사전계획이 수립되어 있지만, 현대서예의 경우에는 화면이 종이가 되었건 골판지가 되었건 크기가 관계없고 칸 나눔이 무시된다. 정형화된 문자의 거부가 첫째 조건이듯이, 정해진 크기에 적당한 내용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상황에 따라 구성하게 된다. 중요한 모티프는 크게 부각시키고 나머지는 주위에서 받쳐주는 형태가 되기도 한다.
 
  글씨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림을 글씨의 뜻으로 수용해야
 
  現代書藝는 회화와도 구별된다. 비록 글자의 맞춤이 헝클어져 의미를 알 수 없고, 色의 수용이 주 표현수단으로 쓰인다 하더라도 전체를 이루고 있는 線의 質은 書藝的 범주에 수용되고 있어야 하며, 형태로 보아 그 의미를 알 수 있도록 造形化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모티프가 서예에서 출발하고 결론적인 도달점도 서예로의 방향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現代書藝는 原論은 書畵 同源論에 두고 글씨를 그림으로 표현하며, 그림을 글씨의 뜻으로 수용하는 동시 표현 방법을 추상적으로 연속 해석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작업을 말한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비판하는 시각 또한 없지 않다. 그러나 現代書藝를 수용하는 측에서는 古典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하고 있다. 즉, 막연한 붓 놀림이 아닌 글씨의 기본적인 구조여건과 서예의 본질을 거친 연후에 파행적인 재구성을 해냄으로써 얻게 된 조형의식을 새로운 서예의 개척적인 집단으로 만든다는 골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現代書藝는 서예를 업고 탄생한 또 하나의 새로운 예술장르이다. 그리고 바로 글씨가 갖는 힘이며, 서예의 멋이며, 예술의 길인 것이다. 수 천 년의 화려한 歷史를 자랑하는 서예는 지금 우리 세대에서 식어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現代書藝는 傳統書藝를 바탕으로 새로 태어난 또 하나의 새로운 藝術이어야 한다.

  사회 문화적 풍토가 그렇고 외면당하는 예술이 무슨 예술이겠는가?

  書藝 !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 變化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혁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 이것이 시대적 요청이며, 사회 문화적 풍토가 그렇고 교육적 배경이 그러하다. 지금 新世代의 구조는 書藝的 情緖와는 거리가 멀고, 한문서예 대하기를 겁낸 지 오래다.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예술이 무슨 예술이겠는가?
 
  藝術的 기반 또한 마찬가지다. 東洋의 漢字 文化圈에서는 예술로 통하지만 서구의 미술계에는 명함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서예가 이 도탄에서 다시 한번 비상할 수 있는 길은 현대서예를 통한 변화와 예술혁신만이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現代書藝 作家들의 情熱的인 創作意慾과 뜻을 모아 하나의 운동으로 확산시키면서 좀더 현대 지향적이고 체계적인 내실을 다져서 大衆과도 가까워지고, 나아가서는 세계화단에 하나의 미술장르로 인정될 때까지 매진해야 하며 꼭 그 날이 다가올 것을 굳게 믿는다. (참조, 현대서예의 세계화를 꿈꾸며 / 포헌 황석봉)
 
 
 5) 作家精神
 
  藝術의 本質은 創造와 模倣이며, 溫故而知新이라고 했다.
 
  옛 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새로운 것이 꽃 피고 뿌리는 뿌리로서 소중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왕희지도 왕희지 한 사람으로 족하고 김정희도 추사 한 사람으로 족하다.
  옛 것을  잇는다고 하면 사실 할 말도 없으나 허구한 날 남의 것을 베끼고 흉내내어 과연 이루면 무엇을 얼마나 이루겠다는 말인가?

  秋史가 살아있고, 王羲之가 부활을 한다해도 자신들이 이룬 것보다 더 차원 높은 서예의 길을 개척한 후배에게 박수를 보낼 일이다.

  정신의 완성이란 있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좀 더 고매한 경지와 고요한 기쁨, 그래서 결국 자기만족을 위해 붓을 드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藝術 魂이라면 거기서 나는 향기를 이웃들에게까지도 기쁨을 전해줘야 할 것이며, 찰나의 筆力으로 힘과 氣가 넘쳐나는 파동의 세계를 구축함으로써 내면의 소리를 표면화해야 하는 것이다.

  現代書藝와 繪畵를 창작하는 기준으로 반드시 전통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통과 단절하고서 새로움의 創出이란 진정한 의미의 창조정신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전통과 단절하고서 새 출발을 하려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새 출발은 반드시 枯死하고 말 것이다. 전통으로의 회귀 없이 전 시대보다 나은 업적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통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목적이 결코 답습이나 모방을 위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창조를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통의 회귀는 오늘날의 잊혀져 가는 예술정신 즉, 진정한 寫의 개념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단순한 객체의 묘사가 아닌 작가의 감정과 생각이 깃들여 져야 할 것이다.
 
 “書藝의 최고 境地는 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잘 쓰려는 욕심, 인정받으려는 욕심을 초월해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인간 본성의 原始性이 남아있는 투박한 것이 최고이지요.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心性이 순수하고 자연 친화적이기 때문에, 남아 있는 서예 작품들을 봐도 한국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기도 합니다”고 말한다. (참조, 전명옥;한국서예협회이사장대담/ issuei;이경미기자)
 
  한자시대가 줄어듦에 현대인들에게 書藝에 대한 정서가 매 말라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前近代的 保守의 틀이 강하게 자리 잡혀 있는 서예가 21세기에 접어든 디지털시대에 필기 문화의 변화로 인해 大衆性을 잃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은 비단 書藝自體가 가지는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그만큼 作家들의 임무가 커지는 것이다.

  藝術이란 결국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며, 서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과정의 결과물들이 작가의 사상과 뜻을 담아 작품으로 표현되어 질 때 생명이 담긴 살아 숨쉬는 藝術인 것이다.

  즉, 화려한 技巧보다는 작가의 精神과 思想이 올곧게 서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6. 서예의 현대성
 
   그렇다면 書藝에 있어서 현대성의 조건이란 어떤 것인가? 간략히 살펴 보겠다. 서예가 現代書藝로서 성립될 수 있는 성격의 조건은 다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媒體의 現代性이다.

   “서양의 평면 예술이 2次元에서 무한 차원을 드러내려 한다면, 서예는 1차원인 線으로 무한 차원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더 어렵지만, 익히고 나면 하나를 꿰뚫어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니 이 만큼 좋은 게 없지요”(참조, 전명옥;한국서예협회이사장대담 / issuei;이경미기자 )
 
  書藝는 고대 문자의 새김질에서부터 지필묵(紙/筆/墨)이라는 고유의 도구사용으로 다른 예술장르와는 차별화를 가져 왔다. 칼에 의한 문자 새기기와 붓에 의한 문자쓰기는 書畵 동원론과도 관계없이 회화(동양미술)로부터도 독립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書藝가 繪畵보다 고도로 발전된 동양에 있어선 일찍이 실용성과 예술성을 병행하여 발전해 왔으며, 더욱이 상고시대 한자(漢字)의 상형적 특수성과 지필묵의 발달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多樣化를 가져 온 것은 특기할 만 하다.
 
  둘째, 主體의 現代性이다.
 
  書藝의 현대성을 규정하는 요인으로 매체 보다 주체의 역할이 더 중요함은 두 말할 나위로 없겠다. 現代書藝의 중심성은 무엇보다 작품의 주체가 되는 작가의 의식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主體的 심물(心物), 즉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올바른 전통개념으로부터 기호학과 해체주의 등 동시대의 서양사상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철학적 미학적 관점을 총망라한 의식구조가 현대성을 규정한다. 모든 창작물은 작가의 사유체계와 현대적 문화환경으로부터 주어진 이미지(心象/心物)의 내면적 세계로부터 베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現代性의 主體는 곧 시대정신에 입각한 作家의 內面 意識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의 뚜렷한 認識論的 觀點이나 주장없이 현대예술에 가담하기에는 이미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다. 傳統的 筆墨으로 흰 화선지에 무슨 문자나 혹은 무슨 書體를 단순히 옮겨 적는 것으로는 글씨이긴 하지만 서 예술(예술작품으로서 서예)로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그것은 범람하는 아류성과 기초적 단계의 수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기 고유성과 작가의 정체성과도 관계되는 문제이다.
 
  차별성과 독창성이 없는 전통적 답습이나 아마추어리즘으로는 더 더욱 논할 수 없는 문제로서 書藝界 밖에선 더욱 발붙일 수 조차 없음이다. 우리는 그 만큼 고도의 전문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진정한 書 藝術의 不在時代를 살고 있는 것이다.
 
   셋째, 制度的 空間의 現代性이다.
 
  書藝의 현대성을 구축해 주는 제도적 공간이라는 세 번째 조건 없이는 앞에서 예시한 두 가지 조건 역시 성립불가능 해진다. 작품과 작가가 있어도 현대적 제도의 장치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소위 書藝文化의 인프라에 해당되는 제도적 조건, 즉 미술관이나 서예관의 전시공간 확보, 사회교육기관의 확대와 대학교육의 설립, 이를 원활히 홍보하고 유통시키 위한 인쇄물이나 전문잡지, 그리고 작품의 정당한 가치 평가를 부여해 주는 평론과 역사서술 등의 뒷받침을 말한다.
 
  구시대와는 달리 이러한 새로운 제도와 조건들이 작가와 작품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韓國 現代 書藝의 성격을 결정 지우는 우리나라의 제도적 공간의 현대성은 아직 미흡하기만 하다. 타 장르의 예술에 비해 겨우 초보단계의 수준에 놓여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모든 문제점들이 보수적 전통고수나 문화적 사대주의에 의한 의식의 낙후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참조:  아트웹진 논단(http://www.artwebzine.com/)
 
  “西洋의 平面 藝術이 2次元에서 무한 차원을 드러내려 한다면, 書藝는 1차원인 線으로 무한 차원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더 어렵지만, 익히고 나면 하나를 꿰뚫어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니 이 만큼 좋은 게 없지요”(참조, 전명옥;한국서예협회이사장대담 / issuei;이경미기자 )
 
  21世紀에 왜 글씨가 중요한가? 書藝가 예술작품에만 그친다면 우리 글씨는 몇몇 서예가들의 전유물에 그치고 대중과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글씨가 새로운 예술과 생활속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한 생명력을 확보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아보고 예술과 생활의 벽을 허무는 서예의 의미를 다시 한번 吟味해보고 反省해 봐야할 때인 것이다.
 
 
  7. 學校에서의 書藝敎育 現實
 
   7次 교육과정의 중점 방향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感性·創造, 個性敎育을 강조하면서 특히 우리나라 전통 미술을 이해하고 繼承·發展 시켜 나아갈 수 있도록 전통 미술 지도를 더욱 강조하고 지역 사회 전통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도록 한다. 라고 제시하고 있다.
 
  “세계 예술계의 흐름과 한국의 書藝정신이 너무도 잘 맞고, 우리에게만 있는 한글을 이용해 우리만의 藝術을 실현할 수 있는 서예의 가능성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는데 (참조, 전명옥;한국서예협회이사장대담/ issuei;이경미기자 )

  그러나 書藝가 가진 예술로서의 가능성에 비해, 최근의 서예 교육 현실은 어둡다.
 
  7次 교과 과정에서 서예가 미술과목으로 統合된 이후 젊은 미술교사의 대부분이 서양화 등 주류 미술 장르 전공자이다 보니 서예가 그만큼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藝術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는 서예가 정작 敎育現場에서 외면 받는 데 대해 많은 書藝人들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아직은 여러모로 산만한 10세 이하 어린 학생들에게는 처음부터 전통 서예로 지루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쉽게 지워지는 검은 물감을 이용하여 아무렇게나 찍고, 그어 유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서예 교육이다.
 
  “산만한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도 6개월만 하면 눈에 띄게 차분해 집니다. 붓은 연필이나 볼펜과 달리 끝이 딱딱하지 않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도 키워주지요. 모든 예술이 그렇듯 創意力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이고, 동양화를 하는데는 필수이며 서양화에도 다양하게 응용이 가능합니다. 붓을 쥐고 글씨를 쓸 때의 바른 자세는 교양과 품위를 키워주며 건강에도 좋지요. 고령화시대에 저렴한 비용으로, 좁은 공간에서 항상 할 수 있는 취미활동도 서예입니다. 우리에게만 있는 한글 書藝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지요”(참조, 전명옥;한국서예협회이사장대담 / issuei;이경미기자 )   
 
  오늘날 세계는 열려 있으며, 세계화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그 나라가 지닌 고유한 민족 문화를 잘 가꾸어야 앞으로의 무한 경쟁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文化를 繼承·發展 시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藝術은 '인간이 지닌 마음의 기술' 이라고 볼 때, 우리 민족의 얼과 빛이 담긴 훌륭한 傳統 文化를 터득하고 이해하여, 民族 文化의 自矜心과 主體性을 일깨우며, 세계화에 대처하는 창의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또한 문화 지향적인 사고와 아동 개개인의 정서함양을 위해 수묵화의 지도는 실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예 지도는 3학년부터 시작되는데, 먹은 낯설기만 하고 그 技法의 多樣性과 難解性으로 인해 쉽게 접할 수 없었으며, 바른 서예의 기법을 체득하지 못하고 고학년이 된다.
 
  어떻게 해야 붓과 친숙해지고 다양한 묘법을 경험하게 될까?
 
  “과거 정석대로 하자면, 書藝를 배울 때는 점 하나 찍는 데만 일주일이 걸립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서예가가 될 것이 아닌 바에야 그럴 필요까진 없지요. 몇 시간에 기초를 마치고 학생들이 최대한 창의력을 발휘해 書藝를 즐기도록 해 주면, 젊은 사람들도 書藝의 매력에 푹 빠집니다”(참조, 전명옥; 한국서예협회이사장대담 /issuei; 이경미기자 )   

   이런 시기의 아동들에게 자유롭고 창의적이면서도 조묵(造墨)과정과 濃淡, 線에 의한 표현에 익숙해지게 하고 線·濃淡·번지기등 다양한 發墨 효과를 길러 회화적 표현에서의 자신감 부족을 필묵 같은 이질적 자료를 통하여 묘법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은 전통문화의 체득을 위한 신선한 활력소로 전환 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수묵화의 다양한 학습을 토대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여 濃墨·淡墨의 만남·갈필의 아름다움·담채·먹과 채색의 혼색·수묵채색화의 단계적인 表現力 伸張을 위한 지도 방안을 강구할 필요성을 갖게 되었으며, 서예의 무궁한 가능성을 공교육의 현장에서 근본적으로 살려나가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키보드와 주먹의 시대 속에 붓과 인내를 지키며 고군분투하는 書藝. 21세기 서예의 앞날에 제 2의 전성기가 오길 기대해 본다. 

  
  8. 맺는 말
 
  書藝의 과정을 통해 心身의 보전과 기능의 향상을 꾀하고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좋은 교육이기 때문에 특별한 技法의 적용이 없더라도, 일생을 두고 꾸준히 서예를 익히면 학문적인 발전과 함께 인격의 도야가 증진될 것이다.
 
  나날이 향상되어 가는 모습에 성취감을 얻게 된다. 드디어 어떤 작품을 완성했을 경우의 성취감과 해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작품을 위해 10번 50번 100번 이상의 작업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 전체적인 모습, 부분적인 모습 등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익히면서 자연히 自然과 人間에 대한 이해가 향상되고 몰입하게 되어 集中力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書는 문자를 통하게 하는 실용적인 요소,

  書를 익히는 과정에서 심신을 수양하는 요소,

  書를 통해 나타난 學問的인 요소, 藝術的인 요소를 갖고 있다.

  이러한 書藝 교육을 위해서 전통 방법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적응해 갈 수 방법 또한 매우 절실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볼펜, 연필, 펜 등을 통한 필사에서도 예술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 주된 목적은 문자로서의 실용적인 효용성을 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毛筆을 사용한 書는 실용성 이외에 美的인 意味, 그리고 筆者의 個性을 포함하고 있고, 수양으로서의 요소와 예술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있다.
 
  書藝를 재미있고 신나는 創作  活動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書藝家 및 전문 교육 기관의 프로그램 계발, 대학에서의 기능 습득을 위한 교과과정 이수 등 多樣한 방법 모색이 있어야 되겠다.

 
                                          부               록
 
         
@ 緣; 인연의 꽃 
 

@ 好取看來是花 ;좋게보면 다 꽃인것을
 
   
     @ 花雨=華雨 ( 꽃비 )
 
 
@  -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의 망언을 규탄하며-
  󰡒 나는 한국땅인디󰡓라는 절규에 찬 통곡 소리 들리는가.
  독도의 (동도와 서도)를 󰡒哭󰡓자로 형상화 시켜
우리의 오방색으로 독도를 보호하고 있음을 표현함.   


 
 @ 황소걸음 ;  욕신내지 않는 황소처럼
             늘 그런 삶이길.........
 

 
@ 洗心(세심); 항상 마음을 깨끗이



@ 청춘 ; 산울림의 노래에서



@ 봄 풍경; 밝고 맑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 耕讀(경독)- 晝耕夜讀에서
   ; 밭을 가는 것이 부유할 것이고,
     책을 읽는 것이 몸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同樂(동락) ;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그 뜨거운 함성을 기리며




@ 터 ; 신형원님의 노래중에서 (518기념초대전)
 


@ 세월 ; 유수같은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 나의 교단 일기에서
 
 
 

@光福 (광복);광복 60주년기념초대전  @낮에 나온 반달은; 동요에서




@ 독도 사랑


@ 정당의 혼탁한 선거 자금을 보고


@ love ; 사랑
 

  
@ no war ; 전쟁반대 홱반대 
출처 : 멍석 서예랑
글쓴이 : 멍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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