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伊厥佛龕碑(唐, 褚遂良)
구양순과 우세남은 대부분 수나라에서 생활했고 당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모두가 이미 60세 이상이었다. 따라서 당나라 서풍의 진정한 개척자는 마땅히 저수량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위로는 종요, 왕희지, 구양순, 우세남을 계승했고, 아래로는 장욱, 안진경을 열어주었으니 당나라 서예의 중심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저수량(褚遂良, 596-658)의 자는 등선(登善)이고 전당(錢塘, 지금의 浙江省 杭州)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본래 하남성 양적(陽翟)이었으나 진나라 왕실이 남쪽으로 천도함에 따라 강남에서 거주했던 당시의 명망귀족이었다. 정관(貞觀) 12년(638) 우세남이 죽자 위징(魏徵)은 당 태종에게 저수량을 추천함에 비로소 정치무대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는 박학다식하고 직언을 아끼지 않아 당 태종의 중용을 얻어 기거랑(起居郞), 간의대부(諫議大夫), 중서령(中書令)을 역임했다. 정관 말에 장손무기(長孫無忌)와 더불어 태종의 유명을 받고 정치를 보좌했다. 고종이 즉위하자 이부상서(吏部尙書), 좌복야(左僕射), 지정사(知政事)를 지내 하남군공(河南郡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를 ‘저하남(褚河南)’이라 불렀다. 후에 고종이 무측천을 세우는 것에 반대해 폄적을 당해서 현경(顯慶) 3년(658)에 애주(愛州)에서 죽었다. 전하는 작품으로 <이궐불감비(伊厥佛龕碑)>, <맹법사비(孟法師碑)>, <방현령비(房玄齡碑)>,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 등이 있다.
<이궐불감비>는 또한 <삼감기(三龕記)>라고도 하며 현존하는 저수량의 최초 작품이다. 비록 이름은 비라고 하지만 실은 마애에 새긴 비의 형상이다. 정관 10년(636) 장손문덕(長孫文德)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이태(李泰)가 낙양의 용문산에다 불굴(佛窟)을 깎아 장손문덕황후를 위한 명복을 빌고자 함에 몇 년 뒤 완성했다. 정관 15년(641) 잠문본(岑文本)이 일을 기록하고 저수량이 서단(書丹)을 했으니 당시 나이 46세였다. 장손황후는 덕이 있는 사람으로 초당 정치에 적극적인 작용을 했다. 그러므로 조정의 문무대신에서 천하의 백성들이 존경해 마지않았다. 이런 존경심과 불굴(佛窟)에 안치하는 장엄한 주제이기 때문에 저수량은 이 비를 특별히 단정하고 장엄하며 맑으면서 간결하게 썼다. 가로획은 평평하고 세로획은 곧으며 질박하고 관박한 것은 마치 어진이의 언행과 같아 지나친 수식을 가하지 않았다. 필세는 때로 예서 특유의 파책을 나타내고 혼후하면서 질박한 가운데 아름다운 기를 함유하고 있다.
기법과 서풍으로 보면 저수량은 한과 수나라의 모든 비와 구양순 ‘명석지서(銘石之書)’의 어떤 특징을 충분히 흡수해서 안은 성글고 밖은 조밀하며 글자체는 조금 납작하고 횡세를 취하며 중심은 비교적 낮아 한나라 예서의 형세와 서로 유사하다. 강하고 모나며 굳세면서 종횡으로 질박하고 착실한 것은 또한 구양순의 글씨와 가깝다. 이와 동시에 본인의 얌전하고 질박한 개성과 강하고 엄한 기개를 섞어 독특한 예술 풍채를 펼쳤다. 이 비는 비록 어떤 곳에서는 약간 판에 박히면서 막힌 느낌이 들지만 이미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저수량의 천재적 예술미가 흘러나온다. 특히 정감을 처리하는 면에서 상당히 뛰어났다. 그의 필치아래 서예는 이미 심경과 정감을 의탁하고 표현하는 예술이 되어 ‘심화(心畵)’의 경지에 도달했다. 후인들은 이 비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했다. 양수경은 『평비기(平碑記)』에서 “방정하고 관박하며 위대함은 있으나 기이함은 운용하지 않았다.”라고 했으며, 또한 “진(陳)과 수나라의 옛날 격식을 따랐다. 저수량은 만년에 비로소 힘써 변화를 구했지만 곱고 아리따움을 알려면 먼저 이와 같은 경지를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유희재는 이보다 더욱 칭찬을 하며 “구양순과 우세남의 뛰어난 점을 겸했다.”라고 했다. 이러한 평가는 대부분 서세와 용필에 착안해서 한 말이다. 사실 가장 귀한 것은 이 안에 포함하고 있는 정감과 개성으로 이는 그의 품격과 기개와 일치한다. 이는 이른바 글씨는 그 사람과 같고 그 뜻과 같다는 것이다.
'^-^ 思開 > 서예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37. 예관첩(唐) (0) | 2008.06.07 |
---|---|
[스크랩] 36. 안탑성교서(唐, 褚遂良) (0) | 2008.06.07 |
[스크랩] 34. 온천명(唐, 李世民) (0) | 2008.06.07 |
[스크랩] 33. 여남공주묘지명(唐, 虞世南) (0) | 2008.06.07 |
[스크랩] 32. 공자묘당비(唐, 虞世南) (0) | 2008.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