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멍석작 /웃자 (종이에 수묵, 담채)
내 노동으로
신동문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 월간 <현대문학> 196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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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난 시인은 3세 때 부친을 여윈 후 편모슬하에서 성장하였고 청년기에 결핵을 앓았다. 23세에 한국전쟁을 맞아 공군에 자원입대, 기상관측병으로 근무하면서 쓴 연작시 <풍선기>가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2등 당선(당선작은 박봉우의 ‘휴전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하지만 그가 시인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불과 10년 남짓이었고, 이 시가 발표될 무렵에는 이미 시를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였다. 1965년 군사정권의 민정이양이 실현되지 않자 “잘못된 시대에 맞서 홍경래는 혁명을 일으켰는데, 잘못된 혁명정권 아래서 시나 쓰고 바둑이나 두고 있는 자신이 밉다”며 이 시를 끝으로 붓을 꺾었던 것이다.
이후 출판과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1969년에는 <창작과 비평> 초대 발행인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필화사건에 연루되면서 얼마 가지 못했다. 그 계기로 일찍이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 한 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72년 충북 단양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야산을 개간, 과수원을 일구면서 지난날의 ‘쓸쓸한 습성’을 다 벗어던져버렸다.
독학으로 침술을 익혀 20년간 인근 주민을 상대로 무상의 인술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췌장암을 선고받고 오랜 투병 끝에 1993년 타계하는데, 그의 장기들은 유언에 따라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기증되었다. 그는 처절하리만치 순결한 저항의 언어로 독특하고 낯선 시의 미학을 남겼으나 우리에겐 대저 잊혀진 시인이었다.
그는 왜 시도 안 쓰고 촌에서 이 고생을 하냐는 옛 문우의 물음에 '내 까짓 재주로 시를 쓴다 해봐야 많고 많은 시인 중의 한 사람이겠지. 차라리 농사짓고 아픈 사람 치료나 해주며 사는 게 백번 낫지'라고 대꾸했다. 정직한 노동의 땀으로 가슴을 적시며 살았던 그의 삶이 ‘야위고 흰 손가락’으로 남들이 쓰는 시를 비슷하게 끼적거리며 사는 시인의 삶보다 과연 가치가 덜한 것인지...
시출처;화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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