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구리'를 한자로는 銅 이라 하는데 銅 이란 金 + 同 이니 쇠와 같다는 말이다.
그리고 글자 구성으로 보아 金(鐵)이 아님) 이 먼저 나왔고 구리가 다음에 나온 것이며 철(鐵) 치우천황때나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 금(쇠金)
金 자는 쇠金자 이다. 그러니까 철(鐵)이 생산 되기 전 철의 원 이름으로 본다.
금은 철 등에 비해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도 녹는다.
원시 우리조상들은 수렵을 해서 고기를 구어 먹다보니 그 고기를 구어 먹던 자리의 돌 들이 하필 금광석 이었고 이 금광석에서 금이 녹아 흘렀내려 점점이 여기 저기에 있었을 것이며 이 금을 다시 뜨거운 불에 구어보니 다시 녹았고 이것으로 화살촉이나 창등 어떤 무기를 만들면 나무나 돌, 또는 집슴뼈 무기보다 탄력이 좋았을 것이다.
이를 당시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던 시절에는 사람 천부인 ㅅ 을 써서 " 솟았다" 는 "소" 라 했을 것이다.(牛인 소도 그 뿔이 솟았음으로 (소)
그리고 그 소 를 짐승인 소와 분별하기 위하여 우리말에서 약방의 감초격 ‘이’ 를 붙여 소이> 쇠(金)이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金은 생산량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색도 아름다워 짐승을 잡는 무기 보다는 주로 왕들의 장식품 등으로 썼을 것이다.
이 필자의 말을 우리 조상이 만들어 썼던 금문에서 확인해 본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여기서 金文1은 그져 무엇인가 점 들이니 이는 녹아 내린 흔적이다. 그러나 金文2 는 그 점들 옆 위 아래로 사람 천부인, 즉 서고 솟는 뜻의 △ 이 붙어있고 金文3,4,5,6 으로 가면서 부터는 우리 말의 뜻을 모르는 중국인들에 의해 △ 이 지붕인 人자로 변하고 또 그 점은 버리지 못한채 그 금을 왕들이 썼다는것을 보여 주기 위해 王자를 쓰고 있다.
** 구리(銅)
* 필자는 첫조선 우리 민족의 이름은 굴 에 살았으므로 굴이> 구리라 한다 했고 이 말은 진서 동이전에 의하면 "여름에는 나무 위의 깃에서, 겨울에는 굴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夏則巢居冬則穴處 - 晋書 東夷傳)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보통 거주하는 굴 구멍의 큰집은 깊고 사다리는 아홉 개까지 있는데 이는 많을수록 좋다"(常穴居大家深九梯以多爲好) 이다. 즉 많은 사람이 사는 큰 굴 구멍 일수록 깊고 사닥다리를 옆으로 아홉 개나 놓았다는 것인데 이 사닥다리를 많이 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굴이 깊고 식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사다리 들은 그 굴 구멍이 평지가 아니라 굴에서 급경사 진곳, 즉 낭떠러지 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 왕동령(王桐齡)이라는 중국 사학자는 이십오사를 인용하여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라 하였고 구려는 옛날 천자의 이름 (古天子之名)이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 라 한다고 했다.
* 위서(魏書)에는 "고리(藁離)에서 온 동명(東明聖王)이 세 사람을 만나 흘승골(訖昇骨)에 이르렀다"라는 말 있다.
* 또 이십오사 에서는 구이(九夷)라 하였다.
이상을 참고로 위에 중국의 기록인 "구려"(九黎), "고리"(藁離), "구이"(九夷 -여기서 구이는 아홉 동이족 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는 구리를 쓴다는 것이 그렇게 써진 것으로 본다
* 주몽의 아버지는 "해벌판" 이라는 뜻의 해부루, 또는 다른 사서는 해모수라 했는데 그렇다면 주몽은 당연히 해주몽이 될 텐데 이 해가 높고 거룩하기 때문에 한자로 쓸 때는 높을 고를 썻으며 따라서 "해구리" 이여야 할 것을 고구려(高句麗)라 한 것이고 고려(高麗)는 고구려에서 "구"자만 생략된 것으로 보는데 한편 고려는 위 굴이 에서 모음이 혼동된 말일수도 있다.
그러니까 당시 사람이란 굴에 씨를 뿌리고 그 굴 속에서 싹이 터 자라면 그 굴 밖으로 나오며 또 먹거리도 입이라는 굴 로 들어가고 그 찌꺼기도 항문이라는 굴로 나오기 때문에 우리말에 똥이나 방귀가 구린내 라는 것도 바로 굴속 냄새라는 말이다. 또 그 사람이 죽어도 결국 땅굴 속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사람이 굴이> 구리란 말이 몇 마디 되지 않던 시절 순박한 우리말이다.
그리고 지방에 따라 모음이 혼동되었는가 하면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위에서 말했듯이 구려(九黎), 구이(九夷), 고리(藁離)라 하다가 이것이 고구려(高句麗)가 되고 고려(高麗)가 되었는가 하면 이것의 영문표기가 KOREA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구리(銅)는 위 金보다 조금 늦게 발견된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구리 라는 銅자가 金+ 同 이기 때문이다.
즉 金을 먼저 알던 선조들이 금은 생산량도 많지 않고 또 아름다워 무기류 보다는 주로 장식용으로 썼는데 구리(銅) 도 금과 비슷한 온도에서 녹고 또 그 처음색은 금과 비슷하며 그 탄력도 금과 비슷한데다가 생산량도 많았을 것이다.
이것을 그 굴이 들이 일상생활에 즐겨 쓰니 그 이름도 구리가 됐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필자는 그 칼 모양이 땅 천부인 ㅁ 자 형태 였고 이를 자주 갈다 보니 현재 무속에서 쓰는 작두칼이 되었는가 하면 그 끝을 예리하게 하여 현재의 칼이 되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금이나 구리는 신석기 문명이 끝나고 청동기 문명이 시작되는 하느님 때부터 있었을 것이다.
이것도 금문에서 확인해 보야 하는데 이 구리 란 말을 중국인들은 모르니 금문에는 빠져 있다.
甲金篆隸大字典 四川辭書出版社刊
그러나 金과 同 이라는 표현은 같으니 위 필자말을 입증한다.
** 쇠 (철鐵)
그러나 이 구리도 역시 강도가 약하여 자주 갈아야 하고 따라서 빨리 마모되니 더 많은 구리 생산을 위하여 이번에는 고기를 굽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리 생산을 위하여 더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리가 아닌 다른 광물이 나왔고 이것이 철(鐵) 인데 이는 한자 구성상 쇠(金)는 쇠 인데 金이나 구리보다 강도가 강하여 방위(防衛) 목적인 韋 자와 그 옆에 창과(戈)자를 붙였기 때문에 쇠 鐵 자가 된 것이고 이는 완전 전쟁 무기로 사용하게 된것으로 본다.
다음은 사기에 써있는 기록이다.
* 공안국이 말하길 "구려 임금의 호가 치우다"
* 찬 이 관중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길 " 노산을 파면 물에 섞인 쇠가 나오는데 치우가 받아서 칼과 창을 만들었다.
* 삭은안관자기 이르되 " 갈로산 을 개발해 보면 쇠가 나온다."
* 운급헌원기에 " 치우씨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이때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구리 머리에 쇠로 된 이마(동두철액)" 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놀라움이 매우 심하였음을 상상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자도 금문에는 없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글자가 하나 있다.
甲金篆隸大字典 四川辭書出版社刊
여기서 주의 할것은 위 說文古文3 의 글자가 金옆에 夷 자라는 것이다. 즉 중국인들이 우리를 부르는 동이(東夷)들이 만들어 썻다는 것이니 金+ 夷 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으로 철의 생산은 우리가 중국보다 먼저란 말이고 그렇다면 세계 최초가 될것이다.
이 철이 생산된 시기는 치우천황이 갈로산에서 채취한 것이 이십오사에도 나오니 금이나 구리 생산은 하느님 때 이었고 철 생산은 치우천황 때로 부터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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